시간이 모자라서? → 사이버 상담도우미 활동은 OK
영어엔 자신있다? → 주말 짬내면 나도 회화수업 교사
서울 압구정중과 역삼중은 학부모의 학교활동참여가 높은 학교로 꼽힌다. 이들 학교의 한 직장엄마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진로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로 나섰고 또 다른 전업주부는 ‘학부모 사이버 상담 도우미’로 학생들의 고민을 듣는다. 자신에게 잘 맞는 학부모 참여프로그램을 선택해 적극적으로 활동해보자. 사진은 서울 역삼중 영어회화반 명예교사로 활동했던 주부 최경화 씨.
“직장일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요.”
“계발활동수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엄마들이 있다는데 전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서요.”
“학교에 갈 때마다 선생님 뵙는 게 부담스러워서 활동은 꺼리게 돼요.”
학교활동에 소극적인 엄마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고민이 있다. 하지만 학부모의 활동을 학교 차원에서 권장하고 학부모를 학교 운영의 주요 주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계속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순간에 전략적으로 활동하면 감수해야 할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점을 기억하자.
바쁘다, 부담스럽다, 잘하는 것이 없다…. 이런 이유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부모라면 다음 엄마들에게 주목해보자. 이들 엄마는 남과 같은 상황에서도 남다른 활동을 펼쳐 각 학교의 추천을 받았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 다음 학기엔 자신 있게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자. 직장엄마라고 덮어두고 학교 활동과 거리를 둘 수만은 없다. 커리어를 활용해 학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대입 입학사정관전형 확대와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많은 학교에서 진로와 직업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에 학부모가 직접 나서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한 학기에 단 1시간 활동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하면 평소의 소극적인 활동을 만회할 수 있다.
○ 전문직 학부모라면… 진로교육 프로그램으로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전윤희 씨(42·서울 강남구)는 다음 달 딸의 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나선다. 서울 압구정중학교에서는 연간 2회에 걸쳐 ‘학부모 강사의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법조인, 의료인뿐 아니라 광고기획, 의상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군의 학부모를 강사로 초청한다.
전 씨는 지난해에도 강의를 맡았다. “다양한 직업을 소개해 요즘 아이들의 획일적인 직업관을 깨뜨리는 데 학부모가 나서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교사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 앞에서 강의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강의 전 △브랜드 컨설팅의 목적 △이 직업에 잘 맞는 적성 △대학, 전공 등 전반적인 진로 △미래 전망 등을 정리했다. 브랜드 컨설팅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대기업이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회사의 심벌을 만들어준 비용으로 50억 원을 지불한 생생한 사례를 들려줬다. 전 씨는 “평소 하는 일을 설명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학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 학부모 학교활동에도 ‘틈새시장’이 있다!
반드시 전문직에 종사해야만 진로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3 아들을 둔 주부 김미노 씨(42·서울 강남구)는 대학원에서 장신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압구정중의 진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인생을 디자인하라’는 주제로 했던 김 씨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대학에선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진짜 원하는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자녀를 키운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 씨는 “학생들이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자신들과 비슷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 것 같다”면서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부모와의 대화가 급격히 줄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데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내 자녀와 또래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활동하기 어렵다면 사이버 활동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학부모 사이버 상담 도우미’는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 상담방에 글을 올리면 온라인으로 상담을 한다. 30시간의 연수를 거치면 활동 자격이 주어지는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2 아들을 둔 학부모 이정림 씨(41·서울 강남구)는 올 초부터 ‘학부모 사이버 도우미’로 활동했다. 부모의 속을 끓이는 장난꾸러기로 유명한 A 군이 상담방에 글을 올렸다. 보이는 것과 달리 A 군은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잘 보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씨는 “사이버 상담을 하다 보면 다른 아이들의 상황과 생각을 통해 내 아이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면서 “학생 상담을 맡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들의 상담도 이어지면서 전교 1등 아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딸을 둔 엄마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고민을 이해하게 됐어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중2 아들을 둔 최경화 씨(45·서울 강남구)는 올해 서울 역삼중학교의 ‘계발활동 명예교사’로 자원해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했다. 외국계 은행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관광통역가이드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최 씨는 영어회화에 자신이 있었다. 3월부터 지난달까지 매월 1회 토요일 오전에 3시간씩 수업을 했다. 중학생 30여 명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활동 후 최 씨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이 줄고 이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 씨는 “선생님이 내 아이에게만 관심을 집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모든 엄마가 갖지만 교사 한 명이 30여 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다”면서 “시작할 때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내 아이가 공부하고 생활하는 교실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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