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박봉월 씨가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고 교실에서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일성여고
“나를 받아주는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시험을 잘 봐야지.”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6일 박봉월 씨(74·여)는 손자 손녀들보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학업을 접은 박 씨는 60여 년의 세월을 건너, 18일 생애 처음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5남매 가운데 맏딸로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박 씨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이후 책과 다시 마주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아다. 24세에 결혼한 뒤 상경해 잠시 만학도의 꿈에 젖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그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그런 박 씨가 2007년 3월 가족들의 응원으로 어렵게 일성여중에 입학했다. 학력인정학교인 일성여중에서 2년 과정을 마친 박 씨는 곧바로 고교 2년 과정도 거뜬히 수료하고 이번에 수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박 씨는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중학교 졸업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욕심이 생기더라”며 “기왕에 온 기회이니만큼 잘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다. 최근 컴퓨터를 배우는 데 열심이던 그는 수능을 앞두고서는 서예학원에도 등록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는 박 씨는 “좋은 공부를 왜 이제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현재 한 종합대학 전통의상학과에 수시 지원을 한 상태. 박 씨는 “30여 년간 한복을 지어왔는데 그 경험을 살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수시든 정시든 원하는 학과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선배로 올 초 경인여대 관광일본어과에 진학한 조재구 씨(77·여)는 “시험 날 돋보기, 따뜻한 옷 등이 필요할 수 있으니 반드시 챙겨가라”며 “차분하게 시험을 치러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한다”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박 씨는 “내게는 뜻 깊은 경험이고 소중한 도전이기 때문에 크게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히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