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같은 경제 관료 길러달라” 서울대에 전재산 20억원 쾌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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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03시 00분


아웅산 테러때 순직한 김재익 경제수석 부인 이순자 교수
살고있는 집도 死後기부… 제3세계 유학관료들 지원

고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인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인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인이 떠난 지 27년. 고인의 아내는 “남편 같은 사람 많이 길러 달라”며 서울대에 전 재산을 맡겼다. 1983년 10월 9일 한국 고위 관료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김재익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 이순자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72)가 서울대에 발전기금 20여억 원을 기부했다. 50여 년 전 선후배로 만나 함께 교정을 거닐곤 했던 학교다. 이 교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두 아들을 기르며 평생 모아온 돈을 선뜻 내놓았다. 사후엔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기증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1일 오연천 서울대 총장과 만나 기부금 규모와 기부 방식 등에 대해 협의를 끝냈다. 공식 약정식은 두 아들이 귀국하는 이달 말 이뤄질 예정이다.

기부금은 ‘김재익 펠로십 펀드’로 사용하게 된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젊은 관료가 서울대에 와서 선진 정책을 배우고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펀드다. 김 전 수석 같은 관료를 키워 제3세계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다. 1960년대 미국 유학을 함께 떠났던 부부가 돈 한 푼 송금 못 받고 장학금으로 버텼던 경험도 이번 기부에 영향을 미쳤다.

이 교수는 27년 전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던 중 라디오 뉴스를 통해 남편의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다. 환하게 웃으며 집을 떠난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이 교수는 한결같이 남편을 기리고 대신하는 삶을 살아왔다.

“일찍 떠나버렸지만 늘 ‘존경받는 사람의 아내’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든든한 남편 노릇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죠.” 서울대에 발전기금을 내놓게 된 것도 남편의 뜻을 따라서였다. 서울대에는 이미 제3세계 출신의 학생, 관료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어렵던 시절 남편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일을 오늘날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도 누군가 해낼 수 있다면 남편이 못 다한 일을 다하는 것 아니겠어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경제 대통령’ 김재익은… 1980년대 경제정책 큰그림 그려 도약발판 마련 ▼

고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왼쪽)과 부인 이순자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김 수석이 생전에 부인과 함께 다정히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왼쪽)과 부인 이순자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김 수석이 생전에 부인과 함께 다정히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1980년대 한국 경제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킨 인물로 통한다.

김 전 수석의 경제 철학은 ‘안정, 자율, 개방’으로 요약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개발 독재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던 당시에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관(官) 주도 경제 체제가 대세였던 그 당시 정부 안팎에서 ‘김재익 철학’에 대한 반발도 많았지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전두환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정책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대외적 압력에 밀려 시장을 열기 전에 능동적으로 시장개방을 준비하고,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키우는 정책의 토대를 마련해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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