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네 살배기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료 인프라가 전국 최고 수준이라며 ‘메디시티’를 외치던 대구의 위상이 곤두박질쳤다는 목소리가 높다. 달서구에 사는 조모 씨(34)는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1일 오후 4시 30분경 딸(4)이 복통을 앓자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당직 의사는 소아전문의가 없다며 다른 병원을 권했다. 조 씨는 경북대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치료를 거부당했다. 당직 의사는 “장이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일 수 있다”며 “파업 중이라 다른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조 씨는 경북 구미의 한 병원으로 갔으나 딸은 치료 도중 장 파열과 쇼크로 이튿날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이 사고 소식이 확산되자 대구시와 경북대병원은 뒤늦게 대책방안을 내놓느라 부산을 떨었다. 대구시는 △휴일 소아진료 당번 병원 운영 △공공응급의료 기능 보강 △주요 병원 응급의료 핫라인 구축 등 긴급 대책을 쏟아냈다. 경북대병원은 처음에는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가 노조에서 반발하자 말을 바꿨다. 병원 측은 진단만 나오면 처치가 가능한 병이어서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을 해줬다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대병원 모두 책임을 회피해 보려는 심산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대구시 대책들은 적어도 메디시티 대구라면 완료됐어야 할 제도가 아닐까. 벌써 ‘뒷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명색이 지역 최고 병원임을 자부하는 경북대병원의 공식 입장이 고작 다른 병원을 안내했다는 것도 문제다. 파업 중이었다 해도 군색한 변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당 기관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시인하고 있다. 대구시 보건과 관계자는 “응급 상황이 갑자기 바뀌는 소아 환자는 부담스럽다. 특정 진료과목 전공의 부족 문제를 겪는 대학병원들이 서로 미루다 벌어진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시와 각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특정 병원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난했다. 대구시는 물론 지역 의료계가 소중한 어린 생명의 희생으로 얻은 교훈을 부디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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