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그 사건 그 후]<1>김길태와 김수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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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0일 03시 00분


직장 관두고 이사 해봐도… 쫓아오는 ‘그 악몽’

성범죄자 김길태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돼 부산 기장군 철마면 실로암 공원묘지에 안장된 이모 양(사건 당시 13세)의 납골당 앞에서 9일 공원묘원 직원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납골당 유리에는 조문객들이 남긴 메모지가 가득했다.
성범죄자 김길태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돼 부산 기장군 철마면 실로암 공원묘지에 안장된 이모 양(사건 당시 13세)의 납골당 앞에서 9일 공원묘원 직원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납골당 유리에는 조문객들이 남긴 메모지가 가득했다.
올 2월 부산에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이모 양(13)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김길태(33). 6월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A 양(8)을 집으로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45). 성범죄자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딸 가진 부모들의 걱정은 올해도 이어졌다. 두 사건이 터지자 국회는 계류 중이던 성폭력 관련 법안들을 부랴부랴 처리했다. 그렇다면 피해 가족과 소녀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반 년이 지났지만 고통은 고통을 부르고 있다.

○ 8세 소녀는 수술대에만 6차례

9일 오후 서울 모 병원 입원실. 120cm가 조금 넘는 키에 몸무게 27.5kg의 가냘픈 체구. 아직 이가 완전히 자라지 않아 웃을 때 앞니 두 개만 보이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 소녀에게 병실은 집과 놀이터다. 김수철에게 성폭행 당한 뒤 6개월 넘게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A 양. A 양이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얼마 전 이사한 집”이다.

1인실 창가 한쪽에 소녀가 직접 만든 토끼 인형이 있었다. 자신을 닮은 예쁜 소녀도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었다. 옆구리에는 배변 주머니가 있었다. 반 년간 차고 있던 지긋지긋한 주머니는 다음 주면 떼어낼 수 있다. 지금까지 장(腸)을 항문에 잇고 직장을 봉합하는 등 수술만 6차례 받았다. 매주 한 번씩은 전신마취를 한 뒤 치료받고 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퇴원하면 비빔밥, 떡볶이, 감자튀김도 먹고요, 수영도 하고 싶어요”라며 A 양은 큰 눈망울을 깜박였다. 하지만 병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자 A 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안한 모습이었다.

어머니 박모 씨(38)는 “상처가 너무 아파 딸아이가 밤새도록 울면서 잠도 못 잘 때가 많았어요. 의료진은 회복을 해도 다친 부위는 정상인의 70%가량만 제 기능을 할 거라더군요. 그 짐승을 생각하면 분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려요”라며 울먹였다. 아버지는 딸을 간호하려고 8월 직장을 그만뒀다. 사건 당시 살던 집도 먼 곳으로 옮겼다. 알려지는 게 싫어 병실의 이름도 가명으로 해뒀다.

김수철은 10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상고는 하지 않았다. A 양의 부모는 올해 7월 학교 운영 및 설치에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김길태는 잘 먹고 잘 잔다”

김수철에게 성폭행당한 A 양이 병실에서 플레이콘(옥수수 재질의 만들기 장난감)으로 만든 토끼와 소녀 인형들. 천진난만한 8세 소녀의 동심이 엿보인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김수철에게 성폭행당한 A 양이 병실에서 플레이콘(옥수수 재질의 만들기 장난감)으로 만든 토끼와 소녀 인형들. 천진난만한 8세 소녀의 동심이 엿보인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부산 기장군 철마면 실로암 공원묘원 납골당. 홍모 씨(38·여)가 자주 찾는 곳이다. 김길태에게 살해된 딸의 유해가 있어서다. 활짝 웃는 딸의 영정 사진을 보면 눈물만 주르륵 흐른다. 자주 꿈에 나오는 딸은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울고만 있다. 홍 씨는 몇 달 전 직장을 그만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도 몇 차례 받았다. 아들(14)도 동생을 못 지켜줬다는 생각에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사건이 터진 뒤 모자(母子)는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부산을 떠나고 싶었지만 딸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김길태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여러 번 쓰러졌어요. 9개월 넘게 내 새끼 생각만 하고 있는데 정상 생활이 되겠어요? 딸을 죽인 놈이 내가 낸 세금으로 교도소에서 먹고 잠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미치겠어요.” 홍 씨는 ‘김길태’라는 이름만 나오면 전화 인터뷰 내내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길태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15일 열린다. 부산구치소는 “(김이) 하루 세 끼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며 운동도 가끔 한다”고 전했다. 김길태는 여전히 “범행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세 차례 정신감정 끝에 별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 성폭력 범죄자 처벌은 강화됐지만…

두 사건이 터지자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해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전자발찌법)’ 개정안이 7월부터 시행됐다. 6월에는 어린이 상대 성범죄자에게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치료를 받게 하는 ‘성범죄자 성충동 약물치료법(화학적 거세법)’도 통과됐다. 하지만 발찌를 찬 상태에서 9세 남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전자발찌마저 끊고 달아났던 여만철(40) 사건을 볼 때 전자발찌가 완벽한 감시를 하진 못했다. 화학적 거세법도 인권 침해 논란이 진행 중이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교도소에서 교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단기적으로 법안만 양산할 게 아니라 형기를 마쳐도 치료하거나 관리하는 통합 관리대책이 확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여중생 성폭행범 김길태, 사형 선고
▲2010년 6월25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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