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다녀간 후… “자손들 가슴이 찢어집니다”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2월 10일 11시 00분


지리산 둘레길 산소 주변에 설치된 호소 안내문.
지리산 둘레길 산소 주변에 설치된 호소 안내문.
● “자손들 가슴이 찢어집니다”

청정한 지리산 둘레길에 ‘자손들 가슴이 찢어집니다’라는 뼈아픈 호소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망자에 대한 예의로 출입을 삼가 주십시오’라는 부탁의 말도 곁들여져 있다.

호 소문이 붙어진 곳은 사유지 산소 앞. 산소를 훼손하는 방문객들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들이 도시락 먹을 자리를 찾다가 평지에 잔디가 있는 산소 주변을 주로 이용하면서 산소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문객 급증 배경에는 인기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있었다.

8월29일부터 9월12일까지 ‘1박2일’ 제작진은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편을 3주에 걸쳐 방송했다.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경로를 나눠 둘레길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청량한 가을 도보여행의 진수를 보여줬다. 더욱이 당시는 멤버 MC몽이 병역비리 논란에 휘말려 하차가 결정된 직후 마지막 방송으로 세간의 관심이 뜨거운 시기였다.

● 착한 예능 ‘1박2일’의 두 얼굴.

높은 시청률은 방문객 급증으로 이어졌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 숲길 안내센터에 따르면 주말 일일 평균 1500~2000명에 머물던 이용객이 방송 직후 10배가 늘면서 17000명~2만명으로 증가했다. 평일에도 60~150명 정도 선에서 방송 직후 600~700명으로 7~10배 정도 뛰었다.

방송 후 여행사들은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해 쏟아냈다. 많은 사람을 태운 대형버스들이 둘레길 인근 마을로 빼곡히 들어와 사람들을 토해내면서 조용한 지리산이 들썩였다.

‘1박2일’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소개하며 유명 여행지로 부각하는데 일조했다. 시골과 전통의 삶을 보여주고, 눈부신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 지방 경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막대한 순기능 뒤에는 상당량의 농작물 채취, 쓰레기 버리기, 부동산 투기, 난개발, 바가지요금 등의 껄끄러운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리산 둘레길도 ‘1박2일’의 ‘두 얼굴’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1박2일팀이 지나간 지리산 둘레길 쉼터
1박2일팀이 지나간 지리산 둘레길 쉼터


기존에 있던 소수의 민박집과 식당 등은 뜻밖의 잭폿을 터뜨렸다. 외지인들이 밀려오면서 지역 경제에도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봉지 든 관광객들이 농작물을 가져가고, 쓰레기를 버리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1. 지역주민들 둘레길 차단

실제로 둘레길 3코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은 농작물 손해와 사유지 훼손이 심해 마을을 통과하는 길을 막고 마을 뒤로 다른 길을 개통했다. 가을걷이를 앞둔 농작물을 가져가고, 산소에 무단 침입해 식사한 뒤 그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 기존 도보 여행객들까지 마을 사이의 길을 이용하지 못해 2~3km 가량의 산길을 콘크리트 포장 길로 돌아가는 불편을 겪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창원마을 경로 변경 안내문.
지리산 둘레길 창원마을 경로 변경 안내문.


4코스 마천면 의중마을에서 벽송사를 거쳐 세동마을로 가는 길 역시 주민들이 직접 막았다. 직간접적인 피해를 경험한 주민들이 둘레길 이정표를 뽑아달라고 안내소에 요청해 길이 바뀌면서, 여행객들은 숲길 보다는 아스팔트 길을 더 많이 걸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 지역 주민은 “지정된 길로만 가면 문제가 없는데 마을과 마을을 연결한 둘레길에서 이정표를 못 찾으면 관광객들이 마을에 오래 머물게 될 때가 있다. 가을에는 농작물 절도사고도 일어나고, 사유지 및 환경이 더러워진다. 하지만 개인적인 손해보다는 지역공동체를 생각해 여러 가지 불만을 참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2. 민박집, 방당 아닌 두당 계산?

위락시설이 없고, 먼 거리에서 온 사람들은 당일치기가 힘든 곳이다 보니 성수기까지 겹칠 때는 민박집이 부족해 때아닌 바가지요금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 여행객들은 “민박집에서 방당이 아닌 두당으로 요금을 받는 곳도 있었다”며 “그런 방도 부족해 헛간 비슷한 곳에서 잤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3. 부동산 투기, 무작위 개발 우려
지리산 둘레길 부동산 투자를 위한 중개업자의 휴대번호 알림판.
지리산 둘레길 부동산 투자를 위한 중개업자의 휴대번호 알림판.

요즘 둘레길은 호젓이 걸으며 푸른 자연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의 눈에 부동산 투자를 알리는 현수막과 알림판도 보인다.

방송 직후 지역 주민들과 외지에 “서울 웬만한 가게보다 둘레길이 낫다”는 소문이 돌면서 쉼터, 모텔, 펜션 개발이 무분별하게 시작됐다. 산길에는 부동산 중개업자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다. 둘레길이 만들어진 의미를 알고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 찾은 여행자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다.
● 둘레길을 지키기 위한 노력 네가지

그럼에도 둘레길을 지키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자발적인 봉사활동, 지역주민과 관공서간의 실무진 합의, 단체 관광객들에 대한 지속적인 안내 등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지리산 숲길 안내센터에 따르면 “둘레길 인기로 쓰레기 문제가 언론에 노출되자 일부 봉사단체와 학생단체, 지역주민, 일반 여행객들이 청소하고 싶다는 제안을 먼저 해온다”며 자발적인 도움의 손길에 감사를 표했다.

또 “지리산 둘레길은 사유지가 많아 길 차단이나 개발 계획에 대한 제제나 통제가 어렵다. 하지만 주민들의 동의로 만들어진 길이니만큼, 실무자들간의 협의를 통해 ‘계속 찾고 싶은 길’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둘레길 안내소에서는 민박 매뉴얼을 만들어 빠르면 올해 안에 시행할 예정이다. 농가 추천 민박은 3인기준 3만원, 식사는 1인 5000~6000원에 맞출 예정. 이용 시설과 요금을 소개해 배포할 예정이다.

관 광객들에게는 ‘책임 여행’과, ‘아니온 듯한 여행’을 강조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을 유도할 예정이다. 지리산 둘레길 신현주 안내센터장은 “둘레길은 자연과 사람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시골 마을, 시골 풍경, 시골 길을 통해 사색하며 걷는 둘레길의 의미를 기대하는 분들을 위해 일반 방문객들에게 ‘스스로 책임지고 여행하자’는 안내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서울탐방’편 방송 이후 이화동 날개벽화를 끝내 작가가 자기 손으로 지워야했던 부작용을 절감한 ‘1박2일’ 제작진도 방송 후 부작용에 대해 “고민스러운 부분”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제 작진은 “좋은 곳을 많이 알리고 공유하려고 만든 프로그램인데 이런 부작용이 생기다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며 “얼마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후 관리에 대해 방송 중에 언급하겠다. 출연자들의 발언을 통해 알리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순수한 의도와 관계없이 피해를 보는 부분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고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전했다.

동아닷컴 이유나 기자 ly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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