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지 리모델링, 이렇게 하자]부양의무자 기준의 허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1일 03시 00분


“생계급여 받기 위해 가족을 해체합니다”

김병철 씨(60·서울 서초구 우면동)는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집을 잃었다.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크레인이 집을 싹 밀어버렸다.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아직 돈을 받지 못해 대책위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탓에 고정적인 일자리도 없다. 이처럼 소득도 집도 없지만 김 씨는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다.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딸이 집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매달 50만 원씩 받던 기초생활보장급여를 3년 전 박탈당했다. 10년 전 사업에 실패했을 때 두 딸도 신용불량자가 된 탓에 연락할 면목도 없다. 김 씨는 “당장 생계도 막막하지만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을 가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득과 재산은 수급권자 기준에 부합하지만 부양의무자(자녀와 사위, 며느리) 기준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지난해 61만 가구(103만 명)에 이른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자녀의 부모 부양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지만 오히려 가족 해체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군구에서 홀몸노인을 돕기 위해 가족들에게 전화하면 소득이나 재산이 드러날까 봐 꼭꼭 숨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반대로 부모를 모시고 싶어도 수급권자 가구원 소득 기준이 너무 낮아 원치 않지만 따로 사는 경우도 있다.

현행 수급권자 가구원 소득기준을 보면, 가구당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3배 이상을 벌면 부모의 수급 자격이 제한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매달 145만 원을 벌면 3인 가구 최저생계비(110만9000원)의 130%를 초과해 가족 모두가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다. 하지만 자녀가 따로 나가 살게 되면 가구원이 아닌 부양의무자가 되면서 부모의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경우 부모는 22만5000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수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주거비 생활비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자녀들이 부모들과 따로 사는 것을 선택한다. 또 미혼 자녀가 부모와 같이 살면 보장 가구, 따로 살면 부양의무자 가구로 간주한다는 허점도 있다.

안상협 한국빈곤문제연구소 간사는 “빈곤층 자녀가 부모와 따로 살게 되면 종잣돈 마련이 어려워 가난이 대물림된다”며 “가구 분리를 하지 않아도 같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도 부처별 예산안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급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50%로 완화하면 6만 명이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예산은 1938억 원이 더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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