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다. 장소는 S고등학교 여학생 기숙사의 비어있는 고3 방. 자정이 지난 시간에 학교 앞에 모인다. 양손에는 통닭과 피자를 챙겨 든다. 인원은 총 5명.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상상되는가? 아니다. 이는 경기지역 S고에 재학 중인 3학년 한모 양(18)의 송년회 계획이다. 한 양은 이번 송년회 명칭을 ‘기숙사 습격작전’이라 칭했다. 이 학교 기숙사는 1∼3학년 중 상위권 성적을 지닌 40여명이 생활한다. 한 양은 고3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다. 지난달 초 고3 전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기숙사 생활을 정리했다. 지금은 모두 집에서 통학하고 있다.
계획은 이렇다. 자정이 넘어 기숙사에 있는 후배들이 잠긴 문을 열어주면 기숙사 안으로 숨어든다.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빈 방’에 모여 최소한의 불만 켜놓고 둘러앉는다. 싸온 음식을 풀어놓고 기숙사 후배들을 불러 모아 밤샘수다를 나누는 것.
“새벽에 몰래 월드컵경기를 보고 밤에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동고동락’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 고3이 모여 ‘연말을 맞아 마지막으로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보자’ ‘이왕이면 후배들과도 추억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한 양)
2011년 새해가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을 앞둔 고교생은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1년 동안 찍은 사진으로 만든 손수제작물(UCC)이나 추억이 담긴 사진과 편지를 재구성한 포토북 등 남다른 기념선물을 제작해 나눠 갖는다. 선생님, 선·후배를 위한 ‘깜짝’ 이벤트를 기획하는 학생들도 적잖다.
기말고사를 앞둔 충북 일신여고 2학년 권보영 양(17)은 송년회 준비로 분주하다. 고1 친구들과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함께하는 송년회를 위한 ‘특별 달력’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이 달력엔 지난해 체육대회, 수학여행 등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담긴다. 송년회 예상날짜는 23일 전후. 시험기간이지만 1주 전에는 인쇄업체에 주문을 마쳐야하기에 틈틈이 각자의 컴퓨터,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을 돌아다니며 바삐 사진을 수집하고 있다.
송년회는 학교에서 진행한다. 제작한 2011년 달력을 선생님께 선물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눌 계획. 권 양은 “송년회를 좀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선생님께는 ‘비밀’을 지키고 있다”면서 “달력을 받고 기뻐하실 선생님 얼굴을 생각하며 모두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H고의 1학년 한 반은 내년 1월 송년회 겸 신년회로 눈썰매장에 놀러갈 계획이다. 1박2일 일정의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바로 저녁에 진행될 ‘요리대회’. 이왕 먹고 노는 송년회라면 ‘우리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란 생각으로 기획했다. 26명은 다섯 조로 나눠 순대볶음, 라볶이, 김치전 등의 음식을 만들어 대결한다. 1등에겐 ‘최고 쉐프(Chef)’의 칭호가 수여될 예정이다. 이 학교 1학년 문모 양(16)은 “교과교실제가 시행되면서 반 친구들이 함께 공부할 시간이 적었다”라면서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요리대회를 생각해 냈다”고 말했다.
바쁜 고교생의 특징을 살린 ‘단기집중’ 송년회도 있다. 경기 J고 기말고사 시험기간은 14∼18일. 하지만 2학년 한 반은 시험기간인 15일 정오부터 정확히 두 시간동안 송년회를 하기로 했다. 왜일까? 이 학교 2학년 김모 군(17)의 설명을 들어보자.
“오후에 학원에 가거나 공부하려는 친구들이 많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요. 점심시간이 최선이라 시험기간에 잡을 수밖에 없었죠. 두 시간이지만 이야기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짧고 굵은’ 송년회를 열 생각이에요.”(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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