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껀터 시. 여기서도 1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마을의 한 사찰에는 면적 10m²(약 3평), 높이 10m 규모의 대형 탑이 있다. 올 7월,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남편 장모 씨(47·구속)에게 살해당한 딸 탁티황응옥 씨(20)를 기리려 탁상(57), 쯔엉티웃 씨(48) 부부가 만들었다. 한국에서 받은 성금의 일부인 2억 동(약 1100만 원)을 들였다. 부부는 딸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사위에게 내린 징역 12년형은 너무 가볍습니다. 적어도 징역 30년은 돼야 합니다. 직접 항소를 하려고 한국 법을 알아봤더니 검찰만 항소할 수 있다더군요.” 장 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에 치료감호, 출소 후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했다. 부산고법은 이달 8일 “자수를 한 데다 반성하고 있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범행으로 볼 때 1심 선고가 가볍지는 않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부부는 고발할 만한 증거가 없어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했다.
부부는 한국에서 답지한 성금 20억 동(약 1억1000만 원)으로 예전보다 넉넉한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농사를 포기하진 않았다. 크메르족 풍습에 따라 성금은 1년간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딸의 영혼이 살아 있는 기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 부부는 “부산 빈소에서 문상, 상주 역할에다 위로금까지 주신 한국 정부, 사회단체, 국민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에 시집간 베트남 여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부부는 호찌민 시 여성신문 응이아인 기자(36·여)를 통해 11∼14일 세 차례에 걸쳐 동아일보와 간접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본보 기자가 부산외국어대와 부산경남 베트남 명예총영사관을 통해 질문을 보내면 응이아인 기자가 부부에게 다시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더욱 가까워진 두 나라
박수관 부산경남 베트남 명예총영사(59)는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를 만났다. 응우옌 총리는 “베트남 국민의 죽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한 한국민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다. 사업 때문에 베트남 출장이 잦은 그는 베트남 정치인과 행정 관료들에게 같은 말을 자주 듣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부산에서는 호찌민 시와의 우정이 돈독해지고 있다. 1995년 호찌민 시와 자매결연한 부산시는 올 9월 호찌민 현지에 ‘베트남 대표 무역사무소’를 열었다. 10월에는 부산에서 호찌민의 날 기념행사도 개최했다. 지난달에는 호찌민 소방서 및 경찰 관계자들이 부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호찌민 교민들은 최근 모금한 2억 동을 국가기관인 호찌민 여성연맹에 베트남 여성 국제결혼 교육비와 복지비로 지원했다. 호찌민 한인상공인연합회 김순옥 국장(47·여)은 “내년에는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고향으로 돌아오는 베트남 여성들을 위해 지원금을 낼 것”이라며 “사건 이후 한국인과 국제결혼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 사건 뒤 불법 국제결혼 철퇴
탁상 씨는 사건 직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예방을 했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탁상 씨 바람대로 국제결혼 피해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미등록 국제결혼 중개업 영업, 혼인 경력과 건강 상태 등 허위 개인신상정보 제공, 허위 과장 광고를 한 중개업체 수백 곳을 적발했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국제결혼중개업 등록 여건과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한 ‘결혼중개업 관리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의했다. 같은 당 김영선 의원도 최근 국제결혼 중개업자에게 결혼 당사자들 신상정보 확인서를 작성하고 공증 받은 뒤 서면으로 제공하는 ‘결혼중개업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무부는 국제결혼 희망 남성들은 결혼 전 전국 14개 출입국관리소 이민통합지원센터에서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교육을 받도록 했다. 교육을 받아야 결혼사증(비자) 발급 신청을 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국내에 2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이면 범죄 피해를 봤을 때 국가 구조금을 받도록 하는 ‘범죄피해자 보호법 개정안’도 이달 초 국회에 제출했다.
농촌총각 김모 씨(37·경남 김해시)는 “국제결혼에 관심이 있어 중개업체에 알아봤더니 예전과 달리 개인 신상과 전과, 질환 유무 등을 꼼꼼히 따졌다”며 “농촌 거리에서도 요즘 미등록 업체가 걸어놓은 국제결혼 현수막과 스티커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