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청마을 주민이 불에 탄 채 방치된 집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방화로 마을 전체 가구의 절반가량이 불에 탔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올 들어 가장 추운 15일 오전 7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청마을 주민들은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패널 사이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산청마을은 서초동 고급 빌라촌 뒤에 자리 잡은 무허가 비닐하우스 구역이다. 1960, 70년대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지금의 마을을 형성했다. 비닐과 합판으로 대충 비바람만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비닐하우스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파출부와 건설노동자 등 일용직으로 입에 풀칠하면서 평생 이곳에서 삶을 이어온 1대 주민들은 어느덧 60대 이상의 노인이 됐다. 매년 봄이면 ‘올해 겨울만큼은 꼭 이사해 추위를 면해보자’는 다짐을 하지만 올해는 그 꿈조차 꾸기 힘들어졌다. 지난달 28일 마을 주민 한 명이 술을 먹고 지른 불로 마을 절반인 21가구, 52명이 손바닥만 하던 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보름이 넘게 지났지만 마을 곳곳에는 타다 만 신문과 이불, 바가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회관으로 쓰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번 주 들어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겨울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로 앞 고급 아파트들에 가려 마을에는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았다. 화재로 집이 모두 불에 탔다는 박숙자 씨(50·여)는 “빌딩 청소를 해서 겨우 네 가족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집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초등학교 4학년 황모 군(10)은 “불에 타고 추운 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며 “친구들처럼 따뜻한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산청마을의 재건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있던 집들이 공원용지에 해당하는 산에 무허가로 세운 건축물이기 때문에 재건이 어렵다는 것이 서초구청 측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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