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9월 유럽 5개국 복지현장을 둘러본 뒤 기획한 ‘한국형 복지모델을 찾아라’에 이어 한국복지제도 재편의 시급성을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복지 리모델링, 이렇게 하자’를 게재했다. 복지자원의 부족, 자활의 침체, 가족의 재조명, 민간의 역할, 그리고 문화복지까지 사회복지제도 개혁에 대한 대안이 제시됐다. 지속적으로 조언했던 한국사회복지학회장으로서 한국 복지의 미래를 논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이 반갑다. 기존 토대 위에 제도와 정책을 바꾸고 새로 꾸미는 형태의 리모델링을 넘어 복지의 철학과 이념의 기저부터 획기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첫째, 패러다임 전환은 복지재정 측면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더 받기 위해 더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할 것을 받기 위해 더 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6.5%를 훨씬 밑돌며 30개국 중 25위 정도다. 국가는 가난하고 개인은 부자인 나라로도 꼽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9%의 사회지출비로 복지국가를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포퓰리즘 논쟁이 요란한데 OECD 평균 20%에 도달하기도 전에 좌우로 나눠지는 것은 우려스럽다. 복지 선별주의 대 보편주의라는 이분법적인 구호에서 벗어나 복지재정과 담세, 복지전달 과정과 흐름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복지의 중심에 자활을 세워야 한다. 과거에 빈곤층이라 함은 근로능력이 없거나 근로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근로능력과 의지가 있고 근로활동도 하고 있는 이른바 신빈곤층이다. 이들의 분포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비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전에 자립을 도와야 한다.
셋째,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은 가족의 재발견이며 지역사회의 재구성이다. 한국의 가족은 아직 살아 있다. 가족주의 문화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를 엮어주는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의 유형을 반영해야 하고 가족에게 양육, 보호, 부양의 과부하를 걸어서도 안 된다.
여성의 46%가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고 있고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가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가족의 재발견은 복지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등으로 나뉜 복지정책을 바꿔 가족 전체를 통합하는 지원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우리의 공동체적 문화 유전자를 복원하고 배양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구성단위임에도 역할이 미미했던 지역사회를 복지체계의 단위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은 복지에 대한 국가의 철학이 담긴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계층 세대 남녀로 나눌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품격은 복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산하 직속 ‘복지발전특별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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