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신 긴급조치 1호는 위헌” 첫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7일 03시 00분


“국민 기본권 심각하게 침해” 정부비판 복역자에 무죄 선고

1974년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유신헌법에 따라 발동된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유신헌법을 비판한 혐의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한 오종상 씨(70)에 대해 반공법 위반 혐의 부분만 무죄를 선고하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면소(免訴·형사재판에서 소송절차를 끝냄) 판결한 재심 판결을 뒤집고 두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긴급조치 1호를 합헌으로 본 기존 판결과, 이번 판결과 견해가 다른 대법원 판결은 모두 폐기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과거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 가운데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아낼 때에는 형사보상을 받을 길이 열리게 됐다.

긴급조치는 1972년 12월 공포된 유신헌법 제53조에 따라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은 물론이고 정부와 법원의 권한까지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초법적 효력을 지닌 특별조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4, 1975년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를 발동했으며 이는 당시 국민의 민주화 욕망을 억누르는 폭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 씨는 1974년 5월 버스에서 여고생에게 “정부가 분식(粉食)을 장려하는데 고위 관료들과 부유층은 국수 약간에 계란과 육류가 태반인 분식을 하니 국민이 정부시책에 어떻게 순응하겠느냐”는 등의 정부 비판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형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오 씨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줘야 한다”며 재심 권고결정을 내렸다. 이후 서울고법은 오 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열린 재심에서 “오 씨의 자백은 폭행과 협박, 고문 등으로 임의성이 없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며 반공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형사처벌의 근거법률이 폐지됐다는 이유로 면소판결을 내렸다. 오 씨는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므로 면소가 아닌 무죄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며 재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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