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구제역 발생은 물론 의심신고조차 없었던 강원도도 사상 최악의 구제역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2일 하루 동안 강원 평창, 화천, 춘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데 이어 원주, 양양, 횡성에서 잇달아 의심신고가 접수되자 강원도는 공포에 떨고 있다.
구제역이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지만 방역 당국은 아직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어디까지 전파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속성 때문에 결국 방역 당국은 이날 ‘백신 접종’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 비상 걸린 강원도
“외지인 절대 못 들어옵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22일 강원도와 시군들은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소속 공무원 동원령을 내리는 등 전시(戰時) 체제와 같은 상황에 돌입했다. 영서 일대는 물론 영동 지역인 양양에서까지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되면서 사실상 구제역이 강원도 전역에 번졌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한 소 거래상이 강원의 발생 및 의심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의심신고가 접수된 ‘한우의 고장’ 횡성군은 모든 집회 및 행사를 전면 금지하고 관외지역 사료 구입 금지, 외부인 출입통제 조치를 내렸다. 고석용 횡성군수는 이날 호소문을 통해 “구제역 방역은 우리 군의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해외여행 자제 및 소독 강화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군민들에게 당부했다. 축산농 조원형 씨(37·횡성군 횡성읍)는 “구제역이 횡성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모든 농가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주민끼리도 왕래를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횡성군은 사육 중인 한우, 육우가 4만4035마리로 군내 주민등록 인구보다 많다.
국내 최대 한우 연구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과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 대관령 삼양목장 등 대규모 축산시설들은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699마리의 한우가 있는 대관령한우시험장은 평창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된 직후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한편 직원들의 외출을 전면 금지했다. 홍성구 시험장장은 “지난달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부터 시험장은 사실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며 “다행히 올겨울에 직접 김장을 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식사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해돋이 축제 등 잇달아 취소
강릉시는 정동진과 경포해변에서 열기로 했던 새해 해돋이 축제를 전면 취소하기로 이날 결정했다. 양양군도 매년 낙산해변에서 개최해 온 해돋이 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고성군도 해돋이 축제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평창군은 23일 진부면 오대천 일원에서 열기로 한 ‘제4회 평창 송어축제’를 구제역 추가 확산 차단을 위해 내년 1월 8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속초시와 동해시는 해돋이 축제 취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다른 시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경북에서도 해맞이 행사가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포항시는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축전’을 전면 취소했다. 영덕군도 해맞이축제를 사실상 취소하기로 했다.
이날 열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는 방역 당국의 초동 대처 미흡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은 “안동에서 폐사가축 신고가 이뤄진 이후 3일이 지나서야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며 “경북 가축위생시험소에서 깔아뭉개다 3일이 지나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경기 포천에서도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구제역이 번졌다”고 말했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초동조치가 미흡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한편 농식품위는 이날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뒤늦게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는 가축 소유자 등이 전염병 발생국을 여행한 뒤 입국할 때 신고를 하지 않거나 가축 전염병을 전파시킨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상임위를 통과해도 본회의를 거쳐야 법이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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