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종 예은이 ‘천사의 노래’… 엄마에겐 기적의 성탄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 최인혜 모녀의 크리스마스

예은이가 활짝 웃는다. 노래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
동의 한 보컬연습실에서 예은이가 강사의 지도에 따라 큰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coopjyh@donga.com
예은이가 활짝 웃는다. 노래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 동의 한 보컬연습실에서 예은이가 강사의 지도에 따라 큰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coopjyh@donga.com
“자, 노래를 시작해 볼까.” 보컬 선생님의 말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예은(11)이가 갑자기 마법에 걸린 것처럼 집중하기 시작했다. 허공만 바라보던 아이는 건반 소리가 울리자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표정도 금세 바뀌었다. 꼭 다물었던 입에서는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노래연습실에서 만난 예은이는 기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간단한 질문을 해도 혼잣말만 반복했다. 예은이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머리에 물이 차는 뇌수종을 앓았다. 엄마 최인혜 씨(54)는 ‘노산이라 위험하다’는 남편과 주변의 만류에도 아이를 낳았다. 생후 42일째 되던 날부터 수술실에 들어간 예은이는 지금까지 총 아홉 번 머리를 여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뇌 안의 물을 빼는 기계를 갈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7세 때는 자폐1급 진단까지 받았다. 예은이의 현재 지능은 6세 수준이다. 그런 예은이가 집중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노래’와 ‘엄마’다.

예은이가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5세 때다. 복지관 동요반에서 눈에 띄는 노래 실력을 보여줬던 것. 악보를 읽지 못하지만 한 번 들은 노래는 잊지 않았고, 선생님의 반주가 틀린 것도 지적할 정도로 타고난 음감을 자랑했다. 노래할 때 딸의 표정이 가장 밝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 씨는 장애인인 딸이 마음 편히 노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쉽지만은 않았다. 방송국 합창단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병 때문에 중도 포기해야 했다. 지난해 10월 소뇌위축증을 앓던 예은이 아빠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로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해 사는 형편이라 남들처럼 개인 레슨을 시킬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에반젤리 합창단’을 만났다.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합창단이었다. 예은이는 합창단에서 유일한 자폐아동이지만 노래만큼은 다른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다. 합창단장을 맡고 있는 홍창진 신부는 “예은이가 노래하면서 웃는 얼굴은 관객들의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며 “예은이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를 부르면 관객이 모두 함박웃음을 짓는다”고 전했다. 최근 예은이는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창단한 ‘메이크어위시 아카펠라 중창단’에도 보컬로 선발됐다.

엄마에게는 예은이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자 큰 선물이다. 혼자만의 세계에서도 늘 노래를 흥얼거리는 예은이를 보면 최 씨는 행복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제 크리스마스 소원요? 예은이가 앞으로도 계속 걱정 없이 노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은이가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할 거예요.” 예은이의 다음 공연은 내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리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희망의 밤’ 행사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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