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로까지 나와 “택시∼” 목숨 건 귀갓길 취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 심야 승차전쟁 현장 가보니

해마다 연말이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내려온 취객과 목적지를 물어보는 택시가
뒤엉켜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해마다 연말이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내려온 취객과 목적지를 물어보는 택시가 뒤엉켜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30분이나 택시를 못 잡고 있어요. 인도에 점잖게 서 있다간 하루 종일 기다려도 집에 못 갈 겁니다.”(대학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30대 회사원)

연말 모임이 집중된 23∼25일 밤 시간엔 유흥가 밀집지역 주변 도로에선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과 이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장거리’를 뛰려는 택시들이 뒤엉켜 난장판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만취한 운전자가 도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취객들을 치어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참사가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강남역 종로 대학로 명동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와 같은 연말 귀가 현장을 취재했다.

○ 택시 잡기 별따기

24일 0시 10분경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도로에 내려가 택시를 잡자 인도에 있던 일행 2명이 갑자기 택시가 멈춰선 2차로로 뛰어들면서 뒤에서 달려오는 승용차가 급정거를 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학로에서 노점상을 하는 전미선 씨(35·여)는 “도로에서 위험한 순간을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취객들이 비틀거리면서 도로에서 택시를 잡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중구 명동에서 만난 회사원 강진구 씨(32)는 “얼마 전 직장 상사가 도로에서 택시를 잡다가 택시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될 뻔한 사고가 있었다”며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지만 20분이나 기다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로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방청용 씨(58)는 “택시운전사는 베테랑이라 도로에 뛰어드는 취객들을 피해갈 수 있지만 초보운전자는 진짜 큰일 날 수 있다”고 했다.

○ 택시 골라 태우기 횡포 때문

취객들이 도로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택시들의 ‘입맛’에 맞는 손님만 골라 태우는 고질적인 승차 거부 때문이다. 유흥가 주변 도로에선 예약등을 켜놓은 채 취객들에게 행선지를 묻고 다니는 택시가 여러 대 눈에 띄었다. 25일 오후 11시 반 강남역에서는 한 취객이 행선지를 말한 뒤 택시 문을 열려다 택시가 갑자기 출발해버리는 바람에 뒤이어 오는 택시에 칠 뻔하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영등포역 주변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택시들이 계속 승차 거부를 하니까 마음이 급해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콜택시를 부르려고 해도 오후 11시만 넘으면 통화하기도 힘들다. 명동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노모 씨(60)는 “본전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예약등을 켜놓고 손님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영등포역에서 “안산이나 수원가실 분”을 외치던 한 택시운전사는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대고 있으면 단거리이거나 만취해 인사불성인 손님을 태울 가능성이 높다”며 “도로에 나온 손님들을 골라 태우는 게 훨씬 낫다”고 귀띔했다.

○ 경찰단속도 별 효과 없어

경찰은 17일 참사를 계기로 연말 유흥가 밀집지역에서 도로에서 택시를 잡는 행위와 승차 거부를 집중 단속하기로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어 보였다. 단속이 강화된 강남역 사거리 주변에선 경찰차가 10분 간격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인도로 올라갈 것과 승차 거부를 하지 말 것을 스피커로 외치고 있었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영등포서 소속 한 경찰은 “취객들이 어디 경찰 말을 듣느냐”며 “솔직히 도로에 있는 취객들을 지켜보면서 정말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동영상=총알택시 탔다가 다치면 보상은 몇%?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