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에 24일 처음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반입됐다. 1978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가동으로 국내 원자력 역사가 시작된 지 32년 만에 처음으로 방폐장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 20년 넘게 표류한 국책사업 ‘결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이날 경북 울진원전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000드럼(한 드럼은 200L)을 방폐물 운송 전용선박인 청정누리호로 운반해 경주 방폐장에 반입했다. 방사성폐기물은 경주 방폐장 내 지상건물인 인수저장시설에서 보관했다가 2012년 지하처분고가 완공되면 지하로 옮겨져 완전히 격리된다.
방폐물은 방사능 수치에 따라 고·중·저준위 폐기물로 구분되는데 원자력 발전 후 남은 원료는 고준위로, 원전에서 배출된 작업복 장갑 등과 병원 및 연구기관에서 나온 주사기 시약병 등의 물품들은 중·저준위로 분류한다.
공단은 “다른 원전의 방폐물도 순차적으로 해상을 통해 옮길 것”이라며 “청정누리호는 자동방사선 감시장치, 이중엔진 등 최첨단 안전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방폐물은 각 원전 부근의 임시저장고에 저장해왔다.
1986년부터 시도된 방폐장 건설은 그동안 인천 옹진군 굴업도, 전북 부안군 등 후보 지역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다가 2005년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로 최종 결정됐다. 경주 방폐장은 현재 지하처분고 등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방폐공단 측은 “2012년 말까지 건설동굴, 운영동굴 등 지하시설 공사를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방폐공단, “안전에 문제없다”
방폐물은 방사능측정기, X선 및 초음파검사 등을 거친 뒤 인수저장시설에 보관된다. 공단 측은 “방폐물의 방사선량은 연간 6밀리시버트 이하로 관리된다”며 “이는 병원에서 X선을 1회 촬영할 때 노출되는 양(6.9밀리시버트)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방사선 감시기 6대가 계속 관찰하고 방폐장 외부에는 환경방사선 감시기가 설치돼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방사선량을 확인할 수 있다. 민계홍 공단이사장은 “폐기물을 같은 기간 보관하더라도 임시저장고보다 인수저장고에서 보관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임시저장고는 이미 꽉 차 있어 하루라도 빨리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방폐물이 최종적으로 옮겨질 지하처분고는 지하 80∼130m 깊이에 80만 드럼 규모로 들어선다. 높이 50m, 지름 23.6m의 콘크리트 처분고를 만들어 그 안에 방폐물을 보관한다. ○ 일부 시민단체 ‘반입 중단’ 요구
이날 방폐물 반입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다소 지연되기도 했다. 경주시의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방폐장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는데 폐기물을 운반해선 안 된다”며 “방폐장 유치 당시 정부가 경주에 지원을 약속했던 것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운반을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의회까지 나서 반발하는 것은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정부가 약속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불만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날 방폐물 반입으로 경주시에 대한 특별지원금 3000억 원 중 아직 지급되지 않은 1500억 원은 경주시 특별회계로 이체되고, 드럼당 63만7500원의 반입 수수료가 지급된다. 반입수수료의 75%는 경주시에 귀속되고, 25%는 공단이 지역발전사업비로 사용한다.
그러나 경주시는 에너지박물관, 영어마을 등 기타 국비 지원 사업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시의원은 “유치 때는 정부가 경주를 위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피부로 와 닿는 것이 거의 없다”며 “이런 태도가 경주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이 해상 운송을 시작하면서 시의회에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도 반발 요인이다. ‘방폐장 현안 해결을 위한 지역공동협의회’ 김동식 위원(전 경주시의원)은 “인수저장시설을 살펴보니 안전성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서도 “정부나 공단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다지 미덥지 않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새롭게 신뢰를 쌓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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