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왕곡동 계요병원의 한 입원실.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중독) 환자인 송윤미(가명·42·여) 씨가 병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송 씨는 올해 8월 이곳에 입원해 4개월째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8년 전 사기를 당해 전세 보증금을 몽땅 날렸던 게 화근이었다. 결혼하려고 모아 둔 돈을 날린 뒤 의욕을 잃고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 8년 동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깨면 또다시 마시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는 “그 기간엔 집에서는 술을 마시고, 깨면 회사로 출근했던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쉬쉬하던 가족들도 송 씨를 병원으로 보냈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걸 마지막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진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감추고 혼자 마시다 보니 누구도 내 상황을 몰랐죠.”
○ ‘키친 알코홀릭’ 늘어난다
여성 알코올 중독 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는 보수적인 음주 문화 때문에 집에서 남몰래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 알코올 중독자인 ‘키친 알코홀릭(kitchen Alcoholic)’이 꾸준히 늘고 있다.
26일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인 다사랑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에 입원한 전체 환자는 2008년 1432명에서 지난해 1332명, 올해는 1305명으로 해마다 줄었다. 반면 여성 환자는 급증하고 있다. 2008년 273명이었던 여성 입원 환자는 지난해 314명, 올해는 327명으로 2년 새 19.8% 늘었다. 여성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25.1%까지 늘어 이 병원에서는 알코올 중독 환자 네 명 중 한 명이 여성이다.
이 병원에 입원한 주부 정수민(가명·36·여) 씨는 전형적인 ‘착한 딸’에 ‘모범 주부’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 입원 환자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대학강사였지만 산후 우울증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재미 삼아 시작했던 술은 퇴근하는 남편 몰래 주방에 숨겨두고 다시 마시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정 씨는 “주위 사람들이 내가 술을 먹는 것을 안 것은 이미 알코올 의존증이 심각한 단계까지 이른 뒤”라고 말했다.
○ 여자라고 쉬쉬하는 문화 없애야
전문가들은 여성 알코올 중독 환자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여성의 음주를 좋지 않게 보는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에서 찾는다. 이종섭 다사랑병원 원장은 “여성 음주자들은 밖에서 남들과 함께 조절해가며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출근하거나 학교에 간 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경우가 많다”며 “알코올 중독 사실이 알려져도 가족 차원에서 은폐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계요병원에 입원한 송 씨 역시 “다른 병이라면 동정이라도 받겠지만 여자가 알코올 중독이라면 가족도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알코올 중독자의 대부분은 두세 번 입·퇴원하다 이혼을 당한다”고 말했다. 김한오 계요병원 알코올센터장은 “여성은 40대에 술을 시작해 단기간인 2, 3년 만에 알코올 중독에 이르는 경향이 높다”며 “남편 등 가족의 깊은 관심과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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