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찰청은 올 들어 하나은행으로부터 현금 1억 원, 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농협 상품권 2000만 원어치와 재래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 5000만 원어치, 대한주택건설협회로부터 현금 4000만 원 등 현금 3억4500만 원과 상품권 1억300만 원어치를 기부 받았다. 그러나 올 한 해 경찰청에 근무하는 전·의경 격려금으로는 30만 원(2월 9일)을 썼을 뿐이다. 2009년도 이월금액 2008만 원을 합쳐 현재 현금만도 3억6478만 원이 남아있다.
#2. 재벌그룹 A 회장은 10월 19일 경기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이강덕 청장에게 기부금으로 현금 1억 원을 전달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고생하는 전·의경들에게 써달라”는 취지였다. 이 자리에는 그룹 계열사 사장들도 대거 참석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청장은 현 정권 들어 대통령치안비서관을 지냈고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A 회장은 앞서 2008년에는 서울지방경찰청에도 현금 1억 원을 기부했다. 당시 서울청장은 지난해 초 경찰청장에 내정됐다 물러난 김석기 씨였다. ○ 경찰조직 중에서도 힘센 기관에 집중
경찰에 대한 기업 및 경제단체들의 기부는 물품과 현금·상품권으로 나뉜다. 중고 노트북, 냉동닭, 전복, 멧돼지, 라면, 운동화, 등산화, 양말 등 다양하게 이뤄진 물품 기부는 전국의 지방경찰청이 모두 받았다.
그러나 유독 현금과 상품권은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 등 3곳에 집중됐다. 막강한 정보력과 인력을 통해 각종 선거와 대형 수사에 활용되는 첩보를 관장하는 경찰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경찰청장(치안총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치안정감은 경찰청 차장, 서울경찰청장, 경기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 네 자리뿐이다.
대구, 울산, 전북, 전남, 제주지방경찰청 등 5곳에는 같은 기간에 현금 기부가 이뤄지지 않았다.
○ 관할 수사기관에 ‘보험성 후원금’?
경찰에 현금과 상품권을 기부한 곳은 주로 대기업과 경제 관련 이익단체, 지역 소재 건설사 등이다.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삼성전자가 경기지방경찰청에 현금 1억 원(2009년)과 상품권 1000만 원(2010년)을, 역시 수원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마사회가 경기지방경찰청에 현금 900만 원과 상품권 5900만 원어치를 각각 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 건설사나 건설협회가 그 지역 관할 지방경찰청에 기부한 사례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전북지방경찰청의 경우 전북건설협회 등과 전주 소재 성전건설로부터 각각 상품권 1440만 원어치와 300만 원어치를 기부 받았다.
정당,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시의회도 해당 지역 경찰에 기부금을 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재임하던 2008∼2009년 인천지방경찰청에 현금 2870만 원을 기부했다. 한나라당 경기도당은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에 현금 200만 원을 기부했다. ○ 집행 내용은 ‘비공개’
기부금품 모금 및 심사는 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기부금심사위원회(8∼12인으로 구성)에서 담당한다. 기부금심사위는 기업, 단체 등이 기부 의사를 밝힌 기부금품에 대해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한다.
문제는 기부금심사위가 ‘민간 출신’ 1, 2명씩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청의 청장, 차장 등 경찰 간부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기부금품모금법에는 ‘기부금심사위는 덕망이 있는 민간 출신이 포함되면 된다’고만 규정돼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동아일보 취재팀은 기부금심사위에 포함된 ‘민간 출신’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경찰청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각 청의 기부금심사위가 현재까지 기부금품을 거부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법상 경찰에 대한 기부금은 전·의경의 위문 목적으로만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다른 공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해도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해석이다. 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감사관실이 수시로 각 청의 기부금품 사용 내용을 점검하는 만큼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전·의경 격려 등에 써달라는 취지로 2006년 개정된 기부금품 모금 및 사용에 관한 법은 생닭, 돼지고기, 운동화, 등산화 등 물품이 보관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현금과 상품권도 기부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갈수록 통상적인 전·의경 격려금만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눈에 띄고 사용 내용에 대한 규제도 없어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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