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만난 13세 필리핀 딸 ‘달콤한 기쁨’과 함께 살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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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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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결혼이주 푸톤 씨 첫 친정 나들이

지난해 12월 28일 푸톤 씨 가족이 친정 근처에 있는 수비크 만의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아들 김규영, 남편 김상수 씨, 조이, 푸톤 씨, 막내 김규선. 수비크 만=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지난해 12월 28일 푸톤 씨 가족이 친정 근처에 있는 수비크 만의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아들 김규영, 남편 김상수 씨, 조이, 푸톤 씨, 막내 김규선. 수비크 만=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엄마는 펑펑 우는데 품에 안긴 딸은 덤덤했다.

두 살 때 엄마가 떠난 뒤 어느새 열세 살이 된 소녀는 “꿈에서 보던 엄마는 훨씬 젊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지난해 12월 26일 필리핀 마닐라국제공항 입국장. 오열하며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 펠리타엘 푸톤 씨(39)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푸톤 씨가 한국에 시집간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정엄마였다. 비행기로 고작 4시간 거리인데 딸은 11년이나 걸려 찾아왔다.

그동안 푸톤 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암으로, 오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라도 살아있을 때 보고 싶다”는 사연이 어린이재단 주관에 현대자동차가 후원한 다문화가정 수기공모에 뽑혀 그 상금으로 친정 방문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푸톤 씨가 수기공모전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미혼모였던 그는 2000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왔다. ‘달콤한 기쁨을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스위티 조이’로 지었는데 딸은 10년 넘게 엄마 없이 컸다.

시집올 때만 해도 조이를 금방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공사현장을 나가고 푸톤 씨는 산모도우미로 일하며 한 달에 80만 원 남짓 벌었다. 그 돈으로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두 남매와 직접 낳은 두 아들을 키우는 형편이라 친정에 가는 것조차 사치였다. 조이를 데려오자는 건 남편 김상수 씨(50)의 결심 때문이었다.

“그동안 제가 데려온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게 고마웠는데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죠.”

공항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바탄 시의 친정집에 도착하자 난생처음 외갓집에 온 푸톤 씨의 두 아들은 마냥 신이 났다. 올해 8세, 10세인 형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구경에 나섰다. 자전거 타는 걸 도와주겠다며 조이가 어깨를 잡자 막내가 서먹한 듯 몸을 비비꼬며 딴 곳을 바라봤다.

조이가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푸톤 씨도 걱정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다른 도시의 공장에서 일했던 친정엄마와 늘 떨어져 살았던 그는 엄마의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어렸을 때 저도 똑같았어요. 엄마랑 떨어져서…. 조이는 저랑 똑같으면 안 돼요.”

다음 날 푸톤 씨 가족은 동사무소를 찾았다. 한국에 가려면 조이의 여권부터 만들어야 했다. 담당직원과 1시간 넘게 상담을 했건만 푸톤 씨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졌다. 여권이 나오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황당하게도 조이의 출생신고서에 이름이 잘못 기재돼 모녀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변호사를 고용해 모녀관계를 법적으로 확인받아야 하는데 수임료 수백만 원은 푸톤 씨가 엄두를 못 낼 거액이다.

그가 동사무소를 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못 데려가면 영영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어떡해요.” 내내 엄마에게 무뚝뚝하던 조이가 엄마의 두 손을 잡아 자기 볼에 갖다 댔다.

그날 오후 김 씨는 의기소침한 아내를 위해 바다 소풍을 제안했다. 한국에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다. 부부는 화로에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서로 물을 튀기다 싸움을 한 두 동생을 조이가 갈라놓고는 막내를 흔들어 귀에 들어간 물을 빼줬다. 엄마 아빠도 물싸움에 가세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4명이었던 가족은 어느덧 5명이 되어있었다.

지난해 12월 29일 취재진의 귀국 비행기에는 남편 김 씨가 함께 탔다. 한국에 먼저 돌아온 그는 변호사 비용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푸톤 씨는 아이들과 고향에 남아 조이가 친딸임을 증명해줄 자료를 모으고 있다. 3일 통화에서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조이와 한국에 같이 가는 소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제가 엄마니까….”

마닐라·바탄=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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