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월 1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요즘처럼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화재 사고도 많아집니다. 어느 때보다 소방관들이 바빠지는 계절인데요. 오늘은 탐사리포트 8번째 순서로, 사고현장에서 큰 부상을 당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구 가인 앵커) 워낙 위험한 상황에서 인명구조를 하다보니 부상으로 심각한 장애를 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이 부상 그 자체보다 더 힘들어하는 게 있다고 합니다. 영상뉴스팀 신광영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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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화염이 번지고 급기야 폭발합니다.
지난 2008년 12월 경기도 이천의 한 대형 물류창고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인부들이 용접작업을 하던 중 불꽃이 튀면서 시작된 불은 4층 건물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습니다.
소방차 100여대와 소방관 500여명이 출동해 진화에 나섰지만 철제 패널 사이에 있는 스티로폼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와 인부 7명이 불에 타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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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신광영 기자 /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 이 곳을 보시면 그 때의 화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불에 완전히 타버린 차량들이 이렇게 쌓여있습니다.
내부를 보니까 그 때 타고 남은 재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쪽을 보면 당시 불길이 얼마나 강했던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녹아내렸습니다.
오직 알루미늄으로 된 휠만 형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 옹벽을 보시면 당시 화재로 생긴 검은 그을음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여기는 당시 화재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창고 건물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생긴 파편들이 쌓여 있습니다.
파편 조각을 보니까 그 때 생긴 검은 그을음이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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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음) 나와! 나와! 나와!
녹아내리던 창고 안에는 불길에 갇힌 한 소방관이 있었습니다.
(현장음) "진태가 안 나왔어. 진태가"
실종자 수색을 하던 소방관들은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자 다급히 뛰쳐나왔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갔던 대원 한 명이 미처 못 나온 겁니다.
언제 또 추가붕괴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
그 때 방화복을 벗은 채 절뚝거리며 나오는 한 사람. 바로 김진태 소방관입니다.
(현장음) 구급차! 병원! 병원!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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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후 2년이 흘렀습니다.
얼굴과 팔, 다리 등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김 소방관은 아직도 치료 중입니다.
얼굴화상이 특히 심각해 늘 마스크와 모자를 씁니다.
얼마 전 피부이식수술을 받았고 오늘은 수술 경과를 보는 날입니다.
(인터뷰) 이병준 / 한강성심병원 성형외과 "입 전체적으로 피부이식을 한 상태거든요. 아무래도 흉터가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이전보단 괜찮지만 아직도 많이 신경이 쓰일 것 같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김 소방관의 별명은 '울트라 진태'입니다.
특전사 출신인 그는 부상 전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자주 출전했습니다.
정예요원이 모인 중앙119구조대안에도 강철체력으로 유명해 세계 각지의 재난현장을 누볐습니다. 특히 지진 피해 국가를 돌며 인명 구조견 조련사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후 그는 활기와 미소를 잃어버렸습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솔직히 직원들하고 같이 식사하는 것도 제가 꺼려요. 될 수 있으면 혼자 먹으려 하고."
치료를 마친 김 소방관이 향한 곳은 바로 119구조대 사무실.
지난 15년 간 긴박한 구조현장을 누볐던 그는 사고 후 내근 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다른 대원들의 배낭이 비어있을 때 아, 내 가방은 여기 있구나, 나는 못 나가는 구나 그런 게 많이 마음이 아프죠. 같이 현장 활동 못한다는 게."
(인터뷰) 이조형 / 중앙119구조대 구조반장 "사고 현장가면 항상 앞장서서 들어가고 맨 후미에서 나오는 그런 아주. 그날도 제일 먼저 들어가고 제일 후미에 있다 고립된 그런 사고였죠."
김 소방관에게 그 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당시 화재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사고 후 처음 와본 그 곳에 들어서자 그가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그 때 실종자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가지고 빨리 확실하게 화재진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런 식으로 얘기가 돼서 안으로 들어가서 서치를 했고."
하지만 수색작업 도중 출입구가 무너지면서 몸이 튕겨저 나갈 정도의 강한 열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스탠드업) 신광영 기자 /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뒤를 보시면 당시 화재로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잔해들이 겹겹이 포개져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곳은 소방관들이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진입했다가 갑작스런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입니다."
가까스로 사지를 빠져나온 김 소방관은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급박했습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얼굴 하고 온몸에 붕대로 칭칭 감고. 손을 한 번 봤어요. 붕대 풀렀을 때 내가 봐도 이건 못 보겠더라고. 나도 현장에서 사체도 많이 보고 많은 걸 봤지만 내 몸이 이렇게 된 걸 딱 보려니까…"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화상치료는 끝이 없는 전쟁.
김 소방관은 집에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지냅니다.
외부 자외선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회복 중인 얼굴 피부가 검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부상 치료로 장기간 입원하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1년 병원에 있었는데 그동안 다른 부모들은 애들하고 놀아주고 그런 게 많았을 텐데…"
피부이식 등 추가 수술을 계속 받아야 하지만 나라에서 치료비를 대주는 것은 딱 올해까집니다.
치료 시작 후 3년이 지나면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월급을 70%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부인마저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 가정 형편도 좋지 않은데 걱정입니다.
(인터뷰) 김진태 / 중앙119구조대 "공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한이 3년이니까 거기에 최대한도로 맞춰서 수술하고 회복하고 해야 되니까."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소방관들은 다양한 안전사고의 위험성에 노출됩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지만 3년 안에 치료가 가능한 부상만 골라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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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인명 구조작업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던 부천소방서 이도재 소방관. 사고 후 그는 화재예방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결재를 받기 위해 그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럽습니다.
(현장음) "(다음 주에 병원 간다는 데 그거 어떻게 됐나? 예약했나?) 월요일에 가서 진단서 첨부해서 수술 날짜 잡는다고…"
당시 사고로 그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오른쪽 다리도 몇 차례 근육 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인터뷰) 이도재 / 부천소방서 "추우니까 발 시리잖아요. 그거 한 두 세배 되니까 때려주면… 피가 돌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거 처음 봤죠? 나도 처음이요."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고 후 3년 반이 지나 지금은 자비로 치료합니다.
왼쪽다리 대용으로 사용하는 의족도 동료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마련해준 겁니다.
(인터뷰) 이도재 / 부천소방서 "소방관들이 출동 갔을 때는 모든 걸 잊고 오로지 현장 활동에만 충성하는 게 다쳤다면 그런 사람을 죽을 때까지 치료를 해줘야 되는데 굳이 3년으로 규정한 것도 좀 가슴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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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상 부상에 대한 치료 보장 기간은 소방관도 일반 사무직 공무원과 차이가 없는 3년입니다.
담당 기관인 공무원연금공단은 치료가 3년을 넘겨도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화 인터뷰) 공무원연금공단 관계자 " 그런 부분들은 아마 국가유공자 등록을 보훈처에 하면 보훈병원이나 보훈위탁병원에서는 치료비가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09년 개정되면서 퇴직을 하거나 순직했을 경우에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됩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부상 소방관에 대한 치료 지원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해놓지 않습니다.
(인터뷰) 안연순 교수 / 동국대 산업의학과 "거기서는 날짜를 정해놓는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일단 사고가 나면 미국은 다른 사고도 마찬가지지만 '케이스 매니저'라는 게 붙어요. 어느 정도 손상이고, 치료기간은 얼마이겠고, 길게 나올 것에 대해선 길게 하고."
외관상 명백한 부상을 입은 소방관들은 그나마 3년이라도 국가가 치료해주지만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소방관 업무적 특성으로 인한 만성 질환에 대해선 별다른 지원이 없습니다.
(인터뷰) 안연순 교수 / 동국대 산업의학과 "소방관들은 굉장히 비참한 시체를 많이 보잖아요.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큰 질환을 얻거든요. 근데 이런 걸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려도 직업병으로 보상받은 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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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소방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장애인으로서 겪는 장벽과도 싸워야 합니다.
(인터뷰) 이도재 / 부천소방서 "사실 이렇게 몸을 잃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그냥 살았죠. 3년을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보면."
(인터뷰) 김진태 / 중앙 119 구조대 "편의점 가서 냉커피 팩으로 들어있는 게 있거든요. 그거 사러 들어갔는데 어제같이 제복을 딱 입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사이에 누가 신고를 했나 봐요. 물건 사가지고 나오는데 경찰이 바로 도착을 해가지고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더라고요."
소방관들의 평균 수명은 한국인 남성 평균 수명보다 20세 정도 낮은 58세.
매년 300명 이상이 다치고 6명 정도가 순직하지만 생명 수당은 고작 매달 5만원.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임용된 지 5년도 안 돼 소방관을 그만두는 비율이 5명 중 1명꼴입니다.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사나 과학자와 함께 최상위권으로 분류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인터뷰) 이도재 / 부천소방서 "왜 후회가 안 되겠습니까. 수많은 직업 중에. 그래도 참 멋있었어요. 직업이. 소방관이란 게 참 멋있지 않습니까. 다들 다 살려달라고 후퇴할 때 전진하는, 남자로서 남을 위해 몸을 불사를 수 있다는 게 참 매력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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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지옥 같은 불속으로 전진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길 기도합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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