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前총리 변호인 “돈 준비한 과정 정확히 기억하나”
한신건영 前경리부장 “캐리어에 돈 담고 목록 기재했다”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510호 법정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9억 원 수수 의혹 사건’ 5차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석의 한 전 총리(오른쪽)는 공판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신건영 정모 전 경리부장(여)이 증인석에서 채권회수 목록의 작성 과정에 대해 증언하자 한 전 총리가 이를 유심히 듣고 있다. 법정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동아일보 최남진 화백이 이날 공판장면을 스케치했다.
17일 열린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9억여 원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 사건 5차 공판의 키워드는 ‘휴대전화 알리바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우진)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번복했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복역 중)의 휴대전화에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시점을 놓고 오후 11시 반경까지 9시간가량 날선 공방을 벌였다.
휴대전화 알리바이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변호인 측이 ‘한 씨의 휴대전화에 한 전 총리의 번호가 저장된 시점은 2007년 8월 21일이기 때문에 그 이전인 2007년 3, 4, 8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로 한 전 총리와 연락을 취하면서 돈을 건넸다는 한 씨의 검찰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3차 공판에서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검찰은 이날 공판이 열리자마자 변호인 측 주장에 반박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변호인 측 또한 검찰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법정에선 ‘프레젠테이션 공방’이 펼쳐졌다. 검찰은 우선 “한 씨가 2004년 5월 한 전 총리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주고 식사를 함께했으며 그 이후에도 아파트 하자 보수, 인테리어 공사 등의 도움을 줬다”며 “전화번호를 저장한 시점 이후에만 통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한 씨가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해뒀다가 2007년 8월 21일 ‘한미라H’라는 다른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전화번호가 (회사 출근 전인) 오전 7시 2분에 입력됐고 △이날 한 전 총리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경선후보로 등록했으며 △이날 한 전 총리의 측근인 김문숙 씨가 한 씨에게서 받은 차명폰을 버리고 새로 휴대전화를 개설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한 씨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흔적을 서로가 없애려 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이에 변호인단은 “검찰이 확실한 증거로 ‘입증’을 하지 않고 가능성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검찰은 “우리는 ‘빅 브러더’가 아니다. 공소 사실에 신뢰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은 민주당 당원이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김모 변호사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씨를 찾아가 한 씨 변호인 선임계를 받아왔다는 점을 들면서 김 변호사가 한 씨의 법정 진술 번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는 듯한 주장을 폈다. 그러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한 전 총리가 “나와는 절대 (관계가) 없다”며 항변했고, 재판장이 이를 제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검찰은 또 민주당 양승조 국회의원이 한 씨를 찾아가 한신건영 전 경리부장 정모 씨(여)의 아버지 이름을 거론한 사실을 꺼내며 한 씨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거칠게 반박했다.
한편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은 증인으로 나온 정 씨를 상대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이 건너간 흔적이 남아 있는 ‘채권회수 목록’이 신빙성이 있는지, 돈을 준비한 과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문제 삼았다. 정 씨는 “채권회수 목록은 사실대로 기재됐다”고 이전의 증언을 재확인했지만 한 전 총리에게 세 차례 전달됐다는 돈 가운데 2007년 7, 8월 두 차례 준비한 돈에 대해선 “혼자 캐리어에 담았는지, 한 씨와 함께 담았는지 세부 정황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정 씨는 지난해 12월 6일 열린 이 사건의 첫 공판에서 “세 번 돈을 담을 때 항상 사장님(한 대표)과 함께 담았다. 한 번은 외부에 있던 사장님의 지시로 돈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지하주차장에 있던 사장님 차 트렁크에 넣은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방이 거세지자 31일 오전 10시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열어 추가 증인 채택 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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