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최억길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 소장은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센터에서 사육 중인 암소 2마리가 이날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센터 측은 전날 암소 6마리가 침을 흘리는 등 구제역 의심 증세를 보이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이날 결과를 통보받았다. 올해 축산연구기관이 구제역에 뚫린 것은 경북도축산기술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 지난해 5월에는 충남도축산기술연구소에서 사육 중인 돼지에게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 우량 가축 연구 타격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마저 구제역에 걸리자 전국의 축산연구기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대부분 구제역 예방을 위해 직원의 출퇴근을 금지하고 합숙생활을 하는 등 최고 수준의 방역 활동을 했기 때문. 더욱이 이들 연구기관에는 혈통이 우수한 씨소나 씨돼지 등이 많아 구제역이 확산될 경우 축산 기반 붕괴마저 우려되고 있다. 우량 한우·돼지 품종 개발, 우량 종돈 보급, 가축 인공수정용 정액 생산 등을 하는 곳인 만큼 이곳에서 기르는 가축이 전염병에 걸려 폐사하면 가축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청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횡성한우’나 ‘하이록한우’ 등 강원도산 쇠고기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역 축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구제역 의심 증상을 보인 암소 6마리는 도살처분됐지만 나머지 가축들은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침 변경으로 도살처분을 면했다. 박창수 강원도 농정산림국장은 “농림수산식품부와 협의한 결과 구제역이 발생해도 백신 접종 14일이 지난 경우 항체 형성 여부에 따라 선별적으로 도살처분한다는 지침을 받았다”며 “샘플링을 통해 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한 결과 90% 이상 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나타나 대량 도살처분은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도축산기술연구소는 5일 사육 중인 칡소 1마리가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아 한우 돼지 흑염소 산양 등 1116마리를 도살처분했다. 이로 인해 경북형 씨수소 개발과 암소 검정사업, 우량 종축 연구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연구소 측은 “연구소가 제 기능을 찾으려면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지역으로 대피시켰던 씨암소 56마리가 한우 개량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강원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에는 토종 칡소 83마리와 한우 404마리, 토종 닭 938마리, 곰 1마리가 있다. 이 중에는 씨수소로 육성 중인 한우 14마리도 포함돼 있다. 씨수소로 선발되면 1마리당 가치는 10억 원을 넘어선다.
○ 방역 위해 창살 없는 감옥 생활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는 강원도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난달 22일부터 외부인은 물론 전 직원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부식과 약품만 소독을 거쳐 반입할 뿐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생활을 한 것. 직원 27명 중 20명이 센터 안에서 생활하고 있고 7명은 밖의 통제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원들은 이 때문에 집안 제사나 친척 경조사도 가지 못하는 등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구제역이 발생해 직원들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센터의 박연수 씨는 “방역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구제역이 발생해 당황스럽다”며 “감염 경로는 짐작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곳뿐이 아니다. 구제역이 발생한 모든 지역의 연구 기관들이 우량 종축(種畜) 사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곽석준 경남축산시험장장은 “장기간 집에 못 가 힘들기는 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 모든 직원이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며 “다음 달 1일까지 이동을 금지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구제역 발생 기간, 규모 신기록 경신
한편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은 20일로 발생 53일째를 맞았다. 지금까지 최장 기간의 구제역으로 기록됐던 2002년의 52일을 깬 것. 규모 역시 연일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이날까지 구제역으로 인한 도살처분 규모는 228만 마리를 넘어섰다. 특히 돼지는 국내 전체 사육 규모(990만여 마리)의 21%인 213만여 마리가 도살처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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