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 107일 금미호 “우리는 왜 버려두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 김대근 선장, 선박 에이전시와 전화서 귀환 지원 호소

“소말리아 해상도 아니고 케냐 해상에서 정상 조업을 했습니다. 나는 해적에게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국민이 해적에게 잡혔는데 정부가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나요. 정말 배신감을 느낍니다. 우리를 왜 내버려 두나요. 이 사건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정부에 강력하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케냐 몸바사 항에서 선박 에이전시 겸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종규 사장(59)은 18일 오후(현지 시간) 금미305호(241t급) 김대근 선장(55·사진)에게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연결시켜준 전화였다. 금미305호는 지난해 10월 케냐 해상에서 조업을 하다 해적에게 납치됐다. 김 선장과 김용현 기관장(68), 중국인 2명, 케냐인 39명 등 43명을 태운 이 배는 소말리아 해적 본거지인 하라데레 항에서 3km가량 떨어진 해상에 23일로 107일째 억류돼 있다. 중국인 2명도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왕칭(汪淸) 현 출신 중국동포인 이재천(31), 김걸 씨(28)다.

석방 협상은 무슬림 종교단체 지도자 등을 통해 김 사장이 하고 있다. 김 사장에 따르면 당초 해적들은 6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영세한 금미305호 상황을 고려해 지금은 10분의 1 수준인 55만∼60만 달러까지 낮췄다. 이 가운데 30만 달러가량은 배에 실려 있던 어획물을 파는 방식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해적들은 “이 정도면 43명에 대한 몸값치고는 싸다. 더는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해적들은 금미호를 모함으로 활용해 해적질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금미305호 상황은 상대적으로 더 나빠졌다. 18일 통화를 마지막으로 김 선장과 연락이 끊겼다. 피랍 이후 2, 3일에 한 번씩은 통화를 했다. 마지막 통화에서 김 선장은 “우리가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은 현재로선 몸값을 주는 것뿐이다. 우리 배를 맡기고 대출을 받든지 정부에서 빌리든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회사든 정부든 몸값을 먼저 제공해주면 나중에 갚을 테니까 제발 풀려나게 해 달라”고 김 사장에게 호소했다.

김 선장과 김 기관장의 건강도 좋지 않다. 김 선장은 “배에 부식이 없다. 거의 개밥을 먹고 있다.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채소 구경도 해본 지 오래다. 기관장은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다. 나도 당뇨 약을 먹고 있는데 언제 약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 사장은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피랍 직후 정부 관계자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언론 접촉을 피하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올해 초 정부는 해적과 협상을 할 수 없고 금미호에 대한 지원도 어렵다며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현지에 대책본부도 없고 상황도 나아지지 않자 김 선장이 정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보였다”고 전했다.

■ 억류 선장-기관장 가족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의 구출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에 대다수 국민이 기뻐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10월 9일 케냐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금미305호(241t급) 김대근 선장(55)과 김용현 기관장(68)의 가족들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이들은 23일 “정부가 협상을 돕든지 아니면 군사작전이라도 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 선장의 부인 송모 씨(부산 사하구 감천동)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다”며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도 없고 정부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많이 섭섭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송 씨는 “정부 지원이나 군사작전이 어렵다면 케냐 현지 선박대리점 업주가 협상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협상 전문가라도 지원해 달라”면서 “당뇨가 있는 남편이 오랜 억류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며 답답해했다.

송 씨에 따르면 금미수산 대표였던 김 선장은 2005년 11월 아프리카 어장을 개척하기 위해 케냐로 떠났다. 하지만 번번이 선박이 고장 나고 어장 개척에 실패하면서 2007년엔 회사가 부도났다. 금미305호도 1억5000만 원가량 담보가 잡힌 상황. 선원 월급을 지급할 형편이 안돼 지난해부턴 김 선장이 직접 배를 몰았다. 김 선장은 지난해 9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하러 나간다. 건강은 걱정하지 마라. 요즘은 작업이 잘된다. 어획량이 많아 담보도 곧 해결할 수 있다”고 위로했다. 송 씨는 “삼호주얼리호 소식은 반갑고 좋았지만 마음도 아팠다”며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기관장의 아들(부산 금정구 구서동)도 “정부가 나서든지 아니면 하는 김에 금미호를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도 벌였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연로하신 아버지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정확한 실상을 모르고 있다”며 “가족들은 피를 말리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 기관장의 부인도 “고혈압이 있는데 약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여러 곳에서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동영상=청해부대 여명작전 동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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