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수현 씨(당시 26세)의 부모 이성대, 신윤찬 씨가 부산 해운대구 집에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방에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너는 내게 있어 여전히 맑은 하늘이며, 상큼한 한 줄기 바람이며, 마음과 마음을 잇는 무지개며, 열렬히 타오르는 혁명의 등불이다’(일본 시인 고야마 슈이치(小山修一)가 고 이수현 씨에게 바친 시 ‘한국의 별’)
이 씨의 부모인 이성대(72), 신윤찬 씨(62)는 이 시를 자주 읽는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들을 보낸 지 10년이 흘렀다. 어느새 칠순과 환갑을 훌쩍 넘겼다. 몇 해 전 부산 연제구에서 해운대구로 이사했다. 동네 주민에게서 위로를 받으면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 집에 아들 방을 하나 꾸몄다. 책장은 언론 기사와 추모 행사 자료로 메웠다. 벽에는 아들 사진과 한국과 일본의 훈장, 복사한 감사패 등을 걸어 놨다.
신 씨는 아들이 살아생전 종종 했던 말을 떠올린다. ‘엄마! 나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 내 주위엔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 눈물이 나다가도 대견한 생각에 빙그레 웃음을 띤다. “도쿄 신주쿠경찰서에서 온전하지 않은 아들 시신을 봤을 때 믿을 수 없었어요. 인정하기도 싫었어요. 사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 질서도 바르고 참 괜찮다. 배울 게 많다’며 우리더러 놀러 오라고 했었거든요.”
부부는 지금까지 일본 도쿄에 40여 차례 다녀왔다. 마음도 편하고 이곳이 성지(聖地)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교수님이 한류의 시작이 드라마 ‘겨울연가’라지만 정신적 한류는 수현이 죽음 이후라더군요. 어떤 일본 사람은 ‘아드님이 두 나라 최고 외교관 100명도 하지 못한 한일 외교관계를 조성했다’는 편지를 보내 왔어요. 곰곰이 생각해봤죠. 우리 아들이 정말 장한 일을 한 것 같아요.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어요.” 부부의 두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촉촉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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