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일반계고에 다니는 고2 A 군은 최근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는 친구 B 군(18)의 얘기를 전해 듣고 화들짝 놀랐다. 이미 입력이 끝난 1학년 학교생활기록부의 특기, 진로 내용을 수정했다는 얘기를 태연하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김 군에 따르면, 친구 B 군은 입학사정관전형인 사회봉사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간다는 전략에 맞춰 학생부 진로지도상황 항목을 ‘봉사’ 관련 내용으로 바꿨다는 것. 김 군은 “B는 3월에 한 차례 담임교사에게 학생부 수정을 요구한 뒤 이뤄지지 않자 5월에 재차 요구한 끝에 수정을 마쳤다고 했다”면서 “이렇게 입학사정관전형에 대비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학생부 내용을 수정해주는 일이 일부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학생부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2학년도에 전체 대입정원의 10.8%에 달하는 총 4만1250명을 뽑는 입학사정관전형에서는 학생의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선발기준으로 삼는다. 이처럼 비교과 영역이 대입의 주요 평가요소로 떠오르자 학교와 학생, 학부모는 학생부 기록에 더욱 신경을 쓴다. 이에 따라 일부 학교에서는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주요 평가 자료로 활용되는 학생부 내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상위권 학생의 학생부 내용을 ‘특별관리’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매년 2월까지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의 학생부 기록을 마치는데, 이후 기재 내용에서 오류가 발견되거나 학생(또는 학부모)이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교사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수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일부 학교에서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해 ‘주도적’으로 상위권 학생들의 학생부 기재 내용 수정을 ‘기획’한다는 것.
서울지역 한 외고에 다니는 C 군은 성적 상위권 학생에 대한 학생부 비교과 영역 ‘밀어주기’가 암암리에 이뤄진다고 전했다. 이른바 ‘특별관리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내신 1등급인 C 군은 지난해 모 교사로부터 ‘학생부에 넣고 싶은 내용을 4, 5줄 적어오라’는 말을 들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에 적고 싶은 내용은 물론 상세표현까지 반영해 주겠다는 것이다. C 군은 “학교에서 최상위권 학생만 학생부 기록을 특별관리해 주는 일이 있다”면서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은 특별히 신경써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의도적인 밀어주기는 명백한 잘못이지만 학생부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강남의 한 사립고 교무부장은 “교과목 교사 한 사람이 담당하는 학생은 수백 명에 달한다. 모든 학생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적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결과적으로 눈에 띄는 상위권 학생을 중심으로 학생부 기록이 이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위권 학생들을 밀어주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학생부 기재가 불가능한 교외 수상기록과 공인어학성적을 여전히 기재하는 학교도 일부 존재한다. 현직 고교교사인 D 씨는 “중3 때부터 중국어 공부를 한 고교생 딸에게 ‘이젠 학생부 기록이 안 되니 중국어 자격시험인 한어수평고사(HSK)를 보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학생부에 공인점수를 올렸다’고 전했다”면서 “원칙을 지켰다가 손해만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담당 교사에 따라 학생부 기록 내용에 차이가 커 학부모와 일선 교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에 들어가는 내용이 담당교사에 따라 편차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재량에 따라 작성된 학생부 내용은 사실과 크게 다르게 기재가 되어 있거나 결정적인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한 수정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학생부 기록은 ‘복불복’으로 불리기도 한다. 담당 교사를 잘 만나지 못하면 학생부 기록상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고교 2학년 E 양은 “1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부에 너에 관해 어떤 내용을 쓰는 게 좋겠느냐’고 내게 의견을 직접 물은 뒤 구체적으로 여섯 줄 이상을 써줬다. 하지만 2학년 담임선생님은 형식적으로 짧게 두 줄을 썼을 뿐”이라며 “신경을 써주지 않는 선생님을 계속 만나면 비슷한 스펙을 가진 학생이라도 고교 졸업 시점에선 학생부 분량이 서너 장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예비 고3 자녀를 둔 최모 씨(44)는 “‘학생부에 적고 싶은 내용을 써오라’면서 양식을 만들어 나눠준 교사가 있는 반면 (학생부에) 입력한 내용을 아이에게 확인조차 시켜주지 않는 교사도 있다”면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제공하는 학부모서비스를 이용하면 자녀의 학생부 기록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누락 혹은 잘못 기재된 내용을 교사에게 알리고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학생부 기재 내용은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얼마나 중요한 평가요소일까.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은 모집단위와 전형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중요한 평가요소”라는 반응이다. 입학사정관이 면접에서 학생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므로 오랜 시간 학생을 보아온 일선 교사가 작성한 학생부 내용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주요대학 입학사정관 자문위원은 “2011학년도 입시에서는 학생부의 독서활동,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면서 “다른 학생과 별반 차이가 없는 형식적인 내용의 학생부를 가진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이럴 경우는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임진택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은 “학생부는 학생의 인성과 학교에서의 태도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라며 “학교와 교사에 따라 학생부 내용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교사의 평가권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라도 학생부 비교과 영역을 비중 있게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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