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으려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서류 및 면접 평가 시 자신이 독서를 통해 쌓은 전공 관련 지식이나 변화된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장재원기자 jjw@donga.com
《예비 고3 정모 군(18·부산 동구). 그는 겨울방학 시작 무렵 ‘본격적인 수험생활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방학에 책을 많이 읽어두리라’ 결심했다. 요즘 대입에 독서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정 군은 책을 사러 대형서점에 갔다. 하지만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베스트셀러 한 권을 집어 와 사흘에 걸쳐 읽었다. 이후에도 독서를 계속하려 했지만 수능 대비 공부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미루기 일쑤. 결국 방학이 끝나가는 현 시점에 두 권도 채 읽지 못했다. 게다가 한 달 전 읽은 책은 내용도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는 “독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막상 무슨 책을 읽는 게 좋은지, 또 읽는다고 해도 이것이 대입에 어떤 식으로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몰라 독서에 대한 욕심을 접었다”고 토로했다.》 독서가 중요한 줄은 누구나 안다. 특히 대입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이 확대되면서 비교과활동 중 한 영역인 독서활동의 평가비중이 커짐에 따라 독서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내신과 수능 공부에 바쁜 고교생들은 막막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입학사정관전형을 염두에 두고 독서까지 하려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독서이력을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법도 고민.
독서에 관한 학생들의 대표적인 질문을 뽑아 주요대학 입학사정관과 고교 교사에게 들어봤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도움이 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학생들이 독서를 시작하기 전 가장 많이 고민하는 점. 쉽게 책을 선택하지 못해 아예 독서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책을 읽는다 해도 뚜렷한 목적이 없어 독서에 금세 흥미를 잃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런 고민에 빠진 학생이라면 우선 자신이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와 연관된 책을 선택하자. 예를 들어 경영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이라면 서점의 경제·경영서적 코너에 가서 최근 베스트셀러를 살펴본 후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것. 비교적 여유가 있는 1, 2학년이라면 ‘국부론’ ‘자본론’ 같은 고전을 읽는 것도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 데 좋다.
임진택 전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은 “관심 분야와 관련된 서적을 통해 학술적,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이를 입학사정관전형 제출서류나 면접에서 드러내면 ‘전공적합성’과 ‘발전가능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범위가 너무 좁아 책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범위를 조금 넓혀 해당 학과가 속해 있는 계열과 관련된 책을 선택해도 좋다. 예컨대 수학과를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꼭 수학과 연관된 책을 고집하지 말고 물리, 화학 등 순수과학 분야에 해당하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땐 독서 후 책 내용 중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자신의 희망학과와 연관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적어두면 관심분야에 대한 보다 폭넓은 탐구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독서활동을 대입에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의 또 다른 고민이다. 막상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라 해도 이를 어떻게 대입에서 활용할지 몰라 자신의 독서이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적잖다. 기왕 독서를 열심히 했다면 수시지원 시 제출서류나 면접에서 이를 적극 드러내는 것이 좋다.
우선 자기소개서를 쓸 땐 ‘지원 동기’나 ‘역경 극복 과정’을 묻는 문항에서 독서를 통해 느끼고 배운 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보자. 예를 들어 역사학과 지망생의 경우 지원동기에 대해 “평소 한국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던 저는 우연히 ‘역사법정’이란 도서를 읽게 됐습니다. 박정희처럼 역사적으로 논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상반된 평가의 관점을 제시하고 재조명 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이렇게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 있는 분석, 연구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적을 수 있는 것. 학업계획서를 쓸 때도 대학에 진학해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면접단계에선 독서활동과 관련한 질문은 단골로 출제된다. ‘최근 읽은 책에 대해 말해보라’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썼는데 이 책을 읽고 얻은 점이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이다. 답변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책을 읽은 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
중앙대 차정민 입학사정관은 연극영화과 지원자를 사례로 들었다. ‘전공과 관련한 책을 읽은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는 질문에 한 지원자는 평소 연기에 대한 자신의 고민이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론서를 읽고 난 뒤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반면 다른 한 지원자는 연극영화과 입시에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기술한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수준의 답변에 그쳤다.
차 사정관은 “이 경우 앞의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눈에 띌 수밖에 없다”면서 “독서를 통해 쌓은 전공관련 지식, 또는 변화된 가치관을 자세히 설명하면 전공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인성까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동안 읽은 책의 목록과 줄거리, 감상을 단순히 나열, 정리하는 방식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지만 이는 대입에서 큰 효력이 없다.
한양대 이정은 입학사정관은 “맥락 없이 독서활동 그 자체만을 양적 측면에서 강조한 독서 포트폴리오는 평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서 “교내외 독서관련대회에서 수상했거나 독서토론동아리에서 활동한 경험 등 독서로 인한 학생의 성장과정이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상 깊게 읽은 책 한두 권을 토대로 탐구활동이나 체험활동을 진행한 뒤 이 내용을 포트폴리오에 담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서울 용화여고에서 논술 및 진로지도를 담당하는 정규희 사회교사는 “예를 들어 건축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불교 건축양식에 관한 책을 읽었다면 이런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실제로 찾아가 보는 것”이라며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전문지식, 체험활동을 하며 배우고 느낀 점 등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면 사정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독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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