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평촌한국요리학원에서 임점숙 원장과 결혼이주여성들
이 각자 만든 요리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안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19일 오전 11시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평촌한국요리학원 실습실. ‘궁중떡볶이’라는 글씨가 적힌 칠판 앞에서 임점숙 원장(55·여)의 조리법 설명이 한창이다. 조리대 앞에는 여성 10여 명이 앉거나 서서 임 원장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메모지를 들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거나 디지털카메라로 연방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마치 대학 연구실처럼 진지했다. 이들은 바로 한국요리를 배우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들이다. 무턱대고 조리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한식을 출신 국가의 음식 스타일에 맞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이들의 숙제다.
○한식 통해 한국문화 이해
경기도여성비전센터(소장 오현숙)는 지난해 말 ‘한식의 현지화 명예대사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 출신 결혼이주 여성 20여 명이 신청했다. 3월 초순까지 매주 수요일 4시간씩 수업이 진행된다. 현재 5번째 수업까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그동안 불고기, 잡채, 비빔밥, 구절판, 궁중떡볶이, 장조림, 부대찌개 등 다양한 한식 조리법을 배웠다.
그렇다고 단순히 조리사자격증을 따려는 것이 아니다. 고국에서 먹던 음식 특성에 맞춰 새롭게 변형시킨 한식을 만들었다. 불고기는 달콤한 소스를 곁들인 불고기샐러드로, 비빔밥은 재료를 잘게 썰어 아이들도 먹기 편한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었다. 레시피 개발을 위해 완성된 요리의 사진촬영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집으로 가져간다. 가족들에게 맛보이기 위해서다. 베트남 출신으로 2004년 결혼과 함께 한국에 온 김연희 씨(26)는 “내가 만든 요리를 시부모님과 남편이 맛있게 먹을 때 기분이 좋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내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맡고 있는 평촌한국요리학원은 하루 두 종류의 요리를 가르친다. 하나는 한식 현지화를 위한 메뉴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메뉴로 선정한다. 결혼이주 여성들이 한식 요리를 제대로 못해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조림이나 부대찌개 같은 음식에 대한 호응이 무척 컸다. 임 원장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초창기에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음식과 말”이라며 “이들에게 한식 레시피를 가르치는 것이 다문화가정의 화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한식 ‘명예대사’를 꿈꾼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 개발한 한식 조리법은 각국 언어로 번역한 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통해 다른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온라인 레시피 제작업체인 ㈜디유티가 레시피를 만들고 있다. ㈜디유티는 외국인근로자가 많은 기업체 등에 레시피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운석 ㈜디유티 대표이사는 “이들이 만든 요리를 통해 앞으로 한국에 올 다문화여성들이 적응하기 쉬운 레시피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나아가 ‘다문화형 레시피’로 한식 세계화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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