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회의실에 김홍일 중앙수사부장과 우병우 수사기획관 등 중수부 간부들과 수도권 소재 검찰청의 특별수사 전담부서 부장검사 20여 명이 모였다. 검찰 내에서 알아주는 ‘칼잡이’인 이들을 지난 주말 긴급히 연락해 불러 모은 사람은 김준규 검찰총장이었다.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4시간가량 이어진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한 사정(司正) 수사 과정에서 느낀 고충을 김 총장에게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함바 게이트’ 사건의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주요 피의자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과 날로 지능화하는 범죄 양상 등으로 힘들어진 수사 환경에 관한 기탄없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날 모임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일선 청의 부장들은 각자 김 총장에게 밀봉한 서류봉투 하나씩을 제출했다. 김 총장의 지시로 이들이 준비해 온 봉투에는 설 연휴 이후 수사에 착수하려고 염두에 두고 있는 사건에 관한 보고서가 담겨 있었다. 보안 유지를 위해 봉투에 담긴 사건 내용은 회의 중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김 총장은 참석자들에게 굳은 표정으로 “검찰의 존재 의의는 부패 척결에 있다. 수사 환경이 어렵지만 새해에도 숨겨진 비리를 발굴해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 총장이 이례적으로 일선 검찰청의 특수부장들로부터 수사계획을 직접 보고받은 것은 대대적 사정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수부를 통해 보고받아도 될 수사계획을 직접 챙긴 것은 지난해 하반기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하며 검찰에 직간접으로 불만을 드러냈던 정재계를 향해 ‘사정수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올해 8월 임기가 끝나는 김 총장이 ‘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내부 경쟁을 촉발하려는 의도에서 예정에 없던 특수부장 회의를 소집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수가 비슷해 서로 경쟁 관계인 수도권 특수부장들로서는 남이 낸 봉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고 이는 치열한 수사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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