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의 희생자 죽산 조봉암 선생에게 최근 대법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을 계기로 53년 전 1심 재판에서 간첩혐의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던 고 유병진 판사(1914∼1966·사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58년 조봉암 선생의 1심 재판장을 맡았던 그는 “‘조 씨 등이 북의 지령을 받고 이에 호응했다거나 간첩과 밀회했다’는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간첩혐의 부분은 무죄로 판단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및 불법무기 소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판결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미움을 사 그해 말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어야 했다.
당시 1심 재판부의 배석 판사였던 이병용 변호사(85)는 24일 통화에서 “유 부장판사와 우배석인 나, 좌배석 배기호 판사 등 3명은 조봉암 선생의 간첩혐의가 무죄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며 “우리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하면 고법에 올라가서 진실이 밝혀져 무죄가 날 줄 알았는데 고법과 대법원에서는 오히려 사형을 선고했다”고 회고했다.
유 판사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재판을 하면서도 크게 고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 치하에서 부역행위를 하거나 전시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단심(單審) 재판만으로 사형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던 때였다. 그러나 유 판사는 집주인이 피란 간 사이 고추장을 훔쳐 먹어 기소된 절도범에게도 무죄를 선고하고 풀어줬다. 이후 지인에게 “난리 통에 남의 고추장을 훔친 것이 징역 10년을 살 만한 큰 죄인가. 법과 현실의 간격을 판사가 메울 수 없고 법의 노예가 돼야 한다면 나는 판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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