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 가혹행위 특별점검]“코 곤다고 자다가 뺨 맞았다” 신참 8% 충격의 ‘가혹행위’ 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8일 03시 00분


전입 6개월 이하 대원들… 경찰청, 이틀째 일제조사

최근 전·의경 6명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집단 탈영한 강원지방경찰청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에 관한 일제조사가 실시됐다. 27일 강원 춘천시 동내면 강원경찰청 대강당에서 전입 6개월 이하 전·의경들이 조심스럽게 소원수리서를 쓰고 있다. 춘천=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최근 전·의경 6명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집단 탈영한 강원지방경찰청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에 관한 일제조사가 실시됐다. 27일 강원 춘천시 동내면 강원경찰청 대강당에서 전입 6개월 이하 전·의경들이 조심스럽게 소원수리서를 쓰고 있다. 춘천=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어떤 날은 잘 때 발목을 묶고 자게 했습니다.”

경찰이 26일부터 일선 전·의경 부대의 구타 및 가혹행위를 특별점검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많이 개선됐거나 일부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았던 구타 및 가혹행위가 여전히 만연한 것. 경찰청이 26, 27일 이틀 동안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서 부대 배치 6개월 이내의 신참 전·의경 4581명을 조사한 결과 365명(8.0%)이 맞거나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제일 먼 제주도로 보내주세요”

특별점검 이틀째인 27일 강원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강원지방경찰청 대강당 앞에서 한 의경은 동기들에게 “잘 때 차려자세로만 자도록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발목까지 묶여서 잤다”고 털어놓았다. 강원경찰청은 최근 전·의경 6명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집단 탈영한 곳. 이 자리에는 전입 6개월 이하 전·의경 151명이 모여 그동안 당한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신고했다.

경찰은 전·의경 대원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피해 상황을 신고할 수 있도록 일부 직원만 남긴 채 모두 강당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일부 대원은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보복당할까 봐 두려운지 소원수리서를 백지로 내려다 다시 쓰기도 했다.

한 대원은 손에 펜을 들고 굳은 표정으로 하얀 종이만 쳐다봤다. 작성 시간이 지난 뒤 일부는 다른 동료에게 “그 내용을 정말 쓰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고참으로 보이는 한 대원이 후배들에게 무슨 내용을 썼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소원수리서를 작성한 한 이경은 “어차피 부대가 다 해체된다고 해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썼다”며 “여기서 제일 멀리 떨어진 제주도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일태 경찰청 감사관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소원수리서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제출하려 한 대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26일 서울 경기 등 5개 지방청에 이어 이날 부산청 등 전국 11개 지방청의 전·의경을 상대로 구타 및 가혹행위에 관한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이틀간의 조사 결과 강원청이 신임 대원의 구타 및 가혹행위 경험률이 19.9%로 가장 높았고 대구청이 2.2%로 가장 낮았다.

○ 엉덩이에 자기 몸 붙이며 성추행


경찰청에 접수된 소원수리서 내용 중에는 서 있는 후임의 엉덩이에 자신의 몸을 대고 성행위 흉내를 낸 선임 대원이 있는가 하면 자다가 코를 곤다는 이유로 뺨을 맞은 후임도 있었다. 양손에 깍지를 끼게 한 채 부동자세로만 자게 하는 일명 ‘개스’라는 괴롭힘도 있었고 선임 대원의 허락 없이 전화를 썼다는 이유로 뺨과 가슴, 배를 주먹으로 맞은 사례도 있었다.

오직 ‘괴롭히기 위해’ 얼차려를 가한 경우도 많았다. 한 이경은 “전입 후 절대 웃지 못하게 하고 TV도 보지 못하도록 막았다”며 “전경버스에서 대기할 때도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지 못하고 정면만 바라보게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전역한 맹모 씨(26)는 “갓 전입한 신입은 고참이 말하라고 시키기 전까지 말할 수도 없는 ‘묵언수행’ 기간이 길게는 3주까지 있다”며 “그 다음에는 서열 등을 외우게 하고 시험을 치르는 등 가혹행위 후에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때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날 공개된 전·의경 가혹행위 사례 중에는 비인간적인 얼차려가 가장 많았다. 접수된 365건 중 구타가 138건, 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사례가 227건이었다. 한 이경은 “폐가 좋지 않아 입대 후 수술을 받았는데 이를 두고 ‘폐병신’ ‘병신○○’라며 지속적으로 모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의경은 “예전에는 단순 구타가 많았는데 지금은 비인간적인 얼차려가 가장 괴롭다”고 말했다.

○ “우리도 조사받나”…압박에 시달리는 선임들

경찰이 전국적으로 일제조사를 시작하면서 일선 경찰서에서 이들을 관리하는 선임대원과 지휘관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한 지휘관은 “속된 말로 요즘 가해자를 찾아내라는 압박에 지옥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다른 경찰서의 한 간부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가해자 색출만 강요하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간부는 “육군 등과 비교할 때 휴일 근무가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전·의경의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경찰 고위 관계자들은 부대 개편 등 근본적인 문제는 내버려둔 채 가혹 행위를 한 선임대원을 밝혀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지역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수경은 “혹시 우리 부대에서도 가혹행위 사실을 써내지는 않았는지 선임병들이 모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춘천=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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