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9시 55분 부산 동구 좌천동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정문에 멈춰선 호송버스 문이 열리자 해적들이 천천히 풀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할 때 보여줬던 기세등등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명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1층에 마련된 수사본부로 힘없이 걸어 들어갔다. 나머지 세 명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모두 예상보다 앳된 얼굴인 이들의 나이는 19∼23세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해경은 이날 오전 4시 20분경 김해공항에서 해적 5명을 인수받고 현장에서 영어와 소말리어로 미리 적어간 미란다 원칙을 해적들에게 읽어준 후 사전구속영장 청구에 따른 구인장을 집행했다.
○ VIP 경호급 압송 작전
압송을 맡은 해양경찰은 테러 등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해적들이 수사본부에 도착할 때까지 철통같은 경비를 폈다. 오전 4시 20분경 아랍에미리트(UAE) 왕실전용기가 김해공항 군사지역에 해적을 내려주자 신병을 인도받은 경찰특공대는 이들을 호송버스에 태워 오전 6시 25분경 공항을 빠져나왔다.
호송버스는 부산지방검찰청까지 약 40분 거리를 25분 만에 주파했다. 호송버스 앞뒤로는 경찰차 6대가 배치돼 취재차량을 통제했다. 수사본부인 남해해경에는 실탄을 소지한 특공대 7명이 상주하며 주변을 감시했다. 김충규 수사본부장은 “해적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될 경우 소말리아 해적들을 자극할 수 있어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에 앞서 소말리아 해적들을 국내로 압송한 전용기에는 UAE에 파견된 아크(Akh)부대원 10여 명도 탑승했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 라는 뜻이다.
○ 12시간 반 만에 구속영장 발부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구속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지 12시간 반 만이다. 검찰 해경 법원 모두 국민적 관심사임을 감안해 사법처리 절차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법원도 사건에 관심이 컸다. 주말이었지만 당직 판사 대신 부산지법 김주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직접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다. 사안의 중대성을 따진 것으로 보인다. 영장실질심사 결과도 1시간 27분 만에 결론이 났다. 부산지법은 “사안이 중대하고 도주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 빈틈없는 수사 준비
해양경찰은 해적 수사를 위해 50여 명의 ‘수사 엘리트’ 사단을 투입했다. 김충규 수사본부장은 1999년 신창원 검거사건을 진두지휘하는 등 부산에서 20년간 활약한 대표적인 강력수사통으로 꼽힌다. 25년 경력의 강력사건 전문가인 서래수 경정도 김 본부장을 도와 수사팀을 이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부산해양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특별수사본부가 있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게 된다. 부산해경 유치장은 12.5m²(약 3.8평)짜리 방 3개로 구성돼 있다. 현재 비어 있는 상태. 수사본부는 해적 5명을 방 3개에 나눠 수용할 예정이다.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해적들에게 내복과 방한용 점퍼를 지급한다. 식사는 부산해경 구내식당에서 제공한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해적들이 이슬람교도라서 돼지고기를 안 먹지만 야전생활에 익숙해 대부분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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