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7일 시작된 한화 비자금 의혹 수사가 157일 만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의 불구속 기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과 한화의 법정 공방은 이제부터 제2라운드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과잉수사 논란으로 기관장인 남기춘 서울 서부지검장이 사표를 낸 검찰은 30일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이례적으로 한화의 수사방해 및 증거인멸 사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추가 수사를 벌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반면 한화 측은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 “이 정도의 사법방해 행위는 처음”
김 회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당하고 기관장까지 물러난 서울서부지검은 그야말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분위기다. 급기야 한화 비자금 수사를 총괄한 봉욱 서울서부지검 차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사법방해 행위는 처음 본다. 제도적으로 수사 방해 행위를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화를 공격했다. 검찰은 한화그룹 측의 조직적 증거인멸 사례로 △압수수색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중요 자료를 파쇄하거나 중요 서류철을 청계산의 한 비닐하우스로 빼돌렸으며 △내부 고발자를 회유하기 위해 5500만 원을 건넸고 △그룹 관계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회사 휴대전화와 수백만 원을 건네며 피신시켰다는 등의 행위를 공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9월 28일로 예정된 한 차명소유회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전날 오후 11시 한화 본사 간부가 ‘압수수색에 대비하라’며 전화해 해당 회사가 밤새 증거를 파쇄한 사실까지 포착했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A4용지 120쪽 분량의 방대한 발표 자료를 냈고 한화그룹 측이 수사를 방해한 사례를 조목조목 들면서 “비자금 수사는 끝났지만 증거인멸 혐의는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또 한화그룹을 빗대 ‘투명경영을 해치는 악성 종양’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회장의 혐의는 대법원 양형기준을 적용할 경우 단기 12년 8개월, 장기 20년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대범죄”라고 말했다.
○ 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
서울서부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원곤 부장)은 이날 김 회장, 전 한화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홍동옥 여천NCC 사장을 비롯한 그룹 전현직 임직원 등 11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회장 개인적으론 1993년 외화를 밀반출해 미국에 별장을 지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네 번째 기소다.
검찰이 이날 밝힌 김 회장 등의 혐의는 △위장계열사를 통한 채무 불법변제 △주식 편법 증여 및 저가 매각 △비자금 1077억여 원 조성 등을 통한 세금포탈 등이다. 검찰은 김 회장이 차명 주주회사의 채무 3500억 원을 그룹 계열사들이 갚게 하는 방식으로 3242억 원을 횡령 및 배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이는 계열사를 연대보증하는 등의 관계로 배임이 아닌 경영상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또 검찰은 김 회장이 380여 개의 차명계좌로 1077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3억 원을 조세 포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 측은 차명계좌는 선대 때부터 내려왔던 재산으로 일정 부분을 이미 인정해 세금까지 납부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증거인멸 혐의는 이미 홍 사장에 대한 두 차례의 구속영장 청구 당시 적시됐던 것으로 우려가 없다는 법원 판단이 이미 나왔다. 장기간 진행돼 온 검찰 수사가 일단락돼 그동안 미뤄온 정기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진행해 기업 활성화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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