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재즈클럽 ‘에반스’ 앞. 일찌감치 이곳에 모여 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클럽데이’를 잠시 중단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려는 준비를 합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의 안내 포스터. ‘사운드홀릭’ ‘드럭’ ‘SKA2’ 등 여기저기 붙은 이 포스터 앞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클럽데이가 중단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왔다”는 직장인 김현승 씨(31)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너무 슬프지 않느냐”며 클럽에 온 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이날은 117번째 클럽데이이자 마지막 클럽데이였다. 클럽데이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홍익대 앞 클럽 18곳을 티켓 한 장(2만 원)으로 모두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 2001년 시작된 이 이벤트가 이날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다.
○ 10년 장수 콘텐츠의 마지막 날
27일만 해도 홍대 앞은 후끈 달아올랐다. 102개 밴드가 홍대 앞 클럽 26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인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 공연이 열렸기 때문.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홍대 앞 클럽 문화의 부흥을 외쳤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28일 홍대 앞 클럽 분위기는 냉랭했다.
2001년 3월 시작된 클럽데이는 당시만 해도 동네 마니아들 위주로 알려진 홍대 앞 클럽문화를 ‘전국 문화’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초기만 해도 테크노 클럽 중심이었으나 2007년 라이브 클럽 행사인 ‘사운드데이’와 통합되면서 행사 규모가 커졌다. 적게는 6000명에서 많게는 1만 명 이상 즐기다 보니 서울시에서도 클럽데이를 ‘서울 테마별 관광코스 30선’에 포함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클럽데이에 제동이 걸린 것은 왜일까. 10년 전 이 이벤트를 기획한 최정한 클럽문화협회 회장은 “정체성 혼란, 상업화 논란, 내부 갈등 등 홍대 앞 클럽을 둘러싼 문제들이 점점 커져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될 것 같아 중단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홍대 앞의 상업화. 그동안 홍대 앞은 인디 밴드나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대안 동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곳이 급속도로 상업화되면서 ‘인디’ ‘창의’보다는 ‘대중’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 클럽 역시 댄스, 힙합 등 홍대 분위기와는 무관한 클럽들이 생기면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클럽데이
하지만 민감한 문제는 ‘돈’이었다. 클럽데이는 하루 동안 이벤트를 벌인 클럽 18곳이 전체 수익을 18등분해서 나눠가지는 제도로 운영됐다. 그러나 이른바 잘나가는 큰 클럽들이 장사가 안 되는 작은 클럽들을 먹여 살렸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최 회장은 “일종의 ‘경제 공동체’로 운영되다 보니 클럽들 중에는 공연이나 서비스 등 더 발전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클럽데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세존 에반스 대표는 “록 밴드 위주의 클럽과 댄스 클럽 사이에 교류가 없음에도 왜 수입을 나눠 갖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클럽데이가 사라지는 것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홍대 앞 클럽은 90개 정도. 이 가운데 중소 클럽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무너지고 있다. 최근 클럽데이에 참가한 댄스클럽 3곳이 문을 닫기도 했다.
클럽문화협회는 새로운 대안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클럽데이를 다시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최 회장은 “록과 댄스를 나눠 개별적으로 진행하거나 수익 배분을 실적 위주로 차등을 두어서 하거나 수익 중 일부를 새로운 분야에 ‘투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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