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외국어고에 다니는 예비 고3 이모 군. 그는 지난해 9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논술학원을 찾았다. 2012학년도 수시모집을 준비하려고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15개월을 앞둔 시점부터 일찌감치 논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군은 “학부모 모임에 갔던 어머니가 ‘이제 수시로 대학에 가려면 논술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뒤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면서 “논술준비를 빨리 시작한 아이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학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논술 ‘광풍’이 아닐까. 2012학년도 수능까지는 아직 9개월 이상 남았지만 서울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지의 유명 논술학원은 문전성시다. 수능 이후 한 달 정도 반짝 호황을 누리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주요 대학 수시모집에서 논술성적을 반영해 학생을 뽑는 비율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진학사 자료에 따르면 2011학년도 주요 대학 수시모집 인원 중 논술전형으로 선발한 학생비율은 고려대 55.5%, 서강대 69.8%, 연세대 69.1%, 한양대 69.7% 등으로 높게 나타났다. 서울소재 26개 대학 중 수시 ‘논술우선선발전형’이 있는 대학은 3분의 1이 넘었다. 2012학년도에 전체모집 정원의 62.1%를 선발하는 수시모집에서도 35개 대학(인문사회계열 기준)이 논술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서울 강남의 한 사립고에 다니는 예비 고3 고모 군(18)은 논술학원 하나만 다닌다. 1월부터 매주 일요일 대치동 논술학원을 찾아 5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고 군의 학교성적은 반 35명 중 10등 안팎. 평균 3등급인 모의고사 성적으로는 상위권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논술성적 100%로 선발하는 수시 논술우선선발전형에 승부수를 띄운다는 계획이다.
고 군은 “우리 반 절반 이상이 논술학원에 다닌다. 주3일을 가는 친구도 많다”며 “입학사정관전형을 준비하기는 늦었고, 논술로 상위권 대학에 가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3월 큰딸을 대학에 입학시키는 윤현주 씨(44·경기 고양시 일산구)는 “지난해부터 논술학원 홍보전단과 설명회가 부쩍 늘었다”며 “수험생 학부모 사이에 논술을 준비해 낮은 성적으로 상위권대학에 들어갔다는 일부 학생의 성공담이 돌면서 논술학원에 보내는 집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현재 대치동의 한 유명 논술학원 강사 K 씨(27)는 “학원 ‘1타 강사’(최고 인기강사)는 수강생이 150명을 넘는다. 조기 마감돼 수업을 못 듣는 학생도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왜 논술준비를 위해 학교를 떠나 학원으로 몰려가는 걸까. 학생들은 “학교에 논술수업을 운영할 선생님이 많지 않고, 수업이 개설돼도 수강 희망인원을 모두 소화하기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예비 고3 신모 군(18·서울 동대문구)은 얼마 전 학교 논술수업을 신청하다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12월 말 학교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은 방과후학교 논술수업이 접수시작 1분 만에 마감됐기 때문. 이 학교에는 정원 25명의 수업 하나가 개설됐을 뿐이다.
신 군은 “고2부터 학원을 안 다니고 공부했지만 논술은 혼자 준비하기 어렵다”며 “2월 중순부터 대치동 학원에서 시작하는 2주 단기 논술특강을 들을 생각”이라고 했다. 취재 결과 서울 양천구의 한 학교는 예비 고3 중 성적순으로 40명까지만 들을 수 있는 논술수업이 운영되는 등 적잖은 학교에선 논술수업이 소수 학생에 한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 대입 논술비중을 줄이겠다는 교과부 입장에 대해 일선 학교에선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서울의 한 자립형사립고 논술교사인 S 씨는 “학생 선발권은 결국 정부가 아닌 대학에 있다”면서 “올해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는 ‘수시=논술전형’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대입 논술전형을 축소하려는 시도보다는 학교현장에서 논술수업을 확대할 수 있는 현실적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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