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한영외고 1층 교실. 윤도권 군(18)과 윤영찬 군(18)이 초등학생인 박경태 군(11)과 이은석 군(11)이 방금 짠 하루 생활계획표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화요일 목요일 일기 검사 맡기, 할 수 있지?” “수학 공부는 매일 해야 돼!”라며 다독여주는 이들은 박 군과 이 군의 ‘학습 멘터’. 강동고 3학년인 이들은 올해 수능을 앞둔 고3 학생이다. 1분 1초가 아까울 때지만 자신보다 박 군과 이 군 공부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발랄했다. 이들은 검은 볼펜을 서로의 엄지손가락에 칠해 ‘지장’이라며 계획표에 찍었다. 이내 ‘조건’ 얘기가 오갔다. “내가 안 지키면 너한테 형이라고 할게”라는 박 군과 이 군. 윤도권 군도 질세라 “이거 다 지키면 우리 선생님들이 너희들한테 형이라고 하마”라며 웃었다. 마치 친형제처럼 친해 보이는 이들은 지금 ‘과외’ 중이다.
○ 영어·수학 넘어서 ‘인생 과외’도
선생님으로 나선 고3 학생 두 명은 모두 강동구 지역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 ‘세빛또래’ 멤버다. 고등학생 160명이 2008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 한부모 가정, 맞벌이집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한 번 3시간씩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다. 무료인 데다 한영외고 등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 학생이 일대일로 밀착해 공부를 가르치다 보니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돌아 지난해부터는 구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교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쪽에서 수학책을 펴 든 박상희 군(18·한영외고3)과 중학교 2학년 유경은 양(14)의 분위기는 진지했다. ‘함숫값’ ‘치역’ 등 수학 용어들이 계속 쏟아졌다. 박 군은 “고3이라 시간이 없지만 과외 봉사다 보니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세빛또래 지도교사인 허건성 씨(55)는 “공부 지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동네 언니 오빠들이 자신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효과도 만만찮다”고 전했다. 실제 봉사단의 한 멤버는 가부장적인 한국인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이혼하려 한 다문화가정 학생의 어머니를 말려 가정 붕괴를 막기도 했다.
○ 자치구별 프로그램 도입 늘어
대부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과외비는 무료다. 자치구들은 ‘스타 강사’ 대신 구 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청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을 활용한 곳도 있다. 구로구는 미국 뉴욕주립대, 워싱턴대를 나온 공익근무요원이 영어, 서울대 한국항공대를 휴학한 공익근무요원이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 프로그램을 지난 한 달간 오류1동 자치회관에서 운영했다. 시범 운영임에도 42명의 동네 학생이 몰려 구로구는 이 프로그램을 여름방학 때 확대 실시할 계획을 세웠다.
영등포구도 구 내 명문대 학생들을 모아 저소득층 학생들을 지도하는 프로그램 ‘학습매니저’를 다음 달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