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문제에는 조건을 제시한 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정답이 무엇인지 골라내는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출제하기도 쉬울뿐더러 문제 속 ‘함정’을 만들기 쉽기 때문. 수험생들은 애매하거나 그럴 듯한 조건이 나오면 큰 고민 없이 문제를 풀어 쉽게 실수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는 조건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조건 제시 문제는 주로 쓰기유형에서 출제된다. 이런 문제는 사실 조건이 많고 복잡할수록 쉽게 풀 수 있다. 조건에 맞지 않는 답안부터 하나씩 지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건은 이해가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2, 3개 제시된다. 보통 어려운 조건은 1, 2개 답지에 포함되며 쉬운 조건은 3, 4개 답지에 해당된다.
비유법 등 표현기법과 연관된 조건은 쉬운 수준에 해당한다. 문제 상황, 상징성, 내용 파악, 정서 파악 등은 다소 어려운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풀 때는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부터 어떤 답지에 포함되는지 점검해 나가는 방법과 쉬운 조건부터 차례대로 점검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상위권 학생, 후자는 중하위권 학생에게 적절한 풀이법이다. 실제로 문제를 보자.
답지 ①번을 보자. ‘조상의 아름다운 미소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라는 표현과 ‘마음을 담은 미소’가 필요하다는 진술이 문제 상황을 반영한다. 또한 미소를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에 비유하고 있다. 보기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것. 답지 ②번은 ‘미소를 잃어 가는 우리 사회’라는 표현에 문제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으나 비유적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 답지 ③번의 경우 미소를 퍼져 가는 ‘햇살’에 비유하지만 문제 상황은 없다. 답지 ④번은 ‘바쁜 일상 속에서 미소를 잃고 사는 우리들’이라는 표현에서 문제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지만 비유적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 답지 ⑤번은 문제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답은 ①번.
이 문제는 정답률이 39%로 매우 낮았다. 오답인 ③번을 선택한 학생이 정답을 선택한 학생 수와 비슷한 비율(30.8%)을 보였다. 학생들이 ③번을 선택한 이유는 <보기>의 조건 중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보고 오답 ③번의 ‘햇살 같은’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림자료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해 이를 ‘조상의 미소’로 알지 못한 점도 정답률을 낮춘 요인이 됐다.
출제자는 <보기> 또는 답지에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제시된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는 답지에 흔들려서 성급히 답으로 골라선 안 된다. 제시된 조건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진 조건인 ‘문제 상황 반영’과 ‘비유적 표현 사용’에 번호를 붙이거나 각 조건의 핵심어에 밑줄을 그어 표시한 뒤 각각의 답지에 이 조건들이 모두 반영됐는지 따져가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문제는 변형된 조건 부과형 문제다. 정답은 ⑤번. ⑤번을 보면 사이버 공간이 자유 공간으로 환영받는 현상을 제시한 뒤, 사이버 공간의 무제한적 자유 때문에 비윤리적 행동이 나타난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다음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논제인 ‘사이버 윤리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답률은 46%.
남은 답지들은 논제에서 벗어나 있거나 내용 전개 방법을 잘못 적용했다. 다른 답지를 분석해보자. ①번 답지는 현상-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예-현상이 생겨난 이유, ②번 답지는 현상-현상이 생겨난 이유-논제 제시, ③번 답지는 현상-현상의 구체적인 제시-논제 제시, ④번 답지는 문제점-문제의 이유-논제 제시로 구성됐다.
특히 ②번이 매력적인 오답이었다. 약 21%의 반응률을 보였다. ②번을 보면 ‘사이버 윤리 규범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면서 현상을 제시한 다음 이어질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나타나기 때문이다’가 제시됐다. 끝으로 ‘그렇다면 사이버 윤리 규범은 어떤 내용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논제도 제시하고 있다. 보기에 나와 있는 ‘현상 제시→문제점 이끌어내기→논제 제시하기’의 세 가지 전개 방법을 숙지한 후 답지를 본 학생들은 답지 ②번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내용에 이어지는 ‘적절한 내용’ ‘논제 제시’를 보면서 서술이 자연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중간단계인 ‘문제점 이끌어내기’가 빠져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②번을 정답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1학년도 수능에서도 이런 유형의 문제가 출제됐다. 문제는 쉬웠다. <보기>에서 제시된 조건은 사실상 세 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폐휴대전화의 양면성 제시’, 두 번째 조건이 ‘양면성을 대구의 형식으로 표현’, 세 번째 조건이 ‘활유법을 활용하여 호소력을 높일 것’이다.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해 홍보 문구를 작성해야 하는 것. 정답은 ①번이다. ‘자원 활용은 두 배로, 환경오염은 반으로’에서 폐휴대전화의 양면성을 대구 형식으로 표현했다. ‘지구가 아프지 않게’에서 활유의 방식이 드러난다. 대구나 활유는 찾기 쉬운 조건이다. ②, ③, ④번은 대구의 형식을 쓰지 않고 있으며 ⑤번은 대구의 형식으로 표현돼 있으나 활유의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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