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학·교·전·설 나를 도와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백마상에 올라타 氣받고··· 연못 속 동상 가슴 만지며 합격 빌고···

《고교생에게 ‘대입’은 최대의 스트레스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모의고사 점수는 제자리걸음이다. 공부를 하다가도 ‘나는 할 수 있을까’ ‘운이 없어 실패하지 않을까’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고교생들의 절실함은 기상천외한 ‘학교전설’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이런 전설들은 교내 동상 같은 유명 상징물부터 교실 안의 작은 화초에까지 ‘철썩’ 달라붙어 살아 숨쉰다. 공통점은 이런 특별한 상징물이나 물체를 대상으로 특정한 행동을 하면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다거나 이들 상징물이 입시 ‘대박’을 도와준다는 내용이라는 것.고교생들은 운이 따른다는 학교전설들에 솔깃해한다. 동상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연못을 헤엄쳐 가로지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요행을 바라는 걸까? 아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다.》
학교 동상, 먹고 기도하고 올라타라!

대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고교생들은 ‘명문대 합격을 도와준다’는 학교 전설에 귀기울인다. 교내 동상, 교문에 깃든 전설을 살펴보면 고교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 수 있다.
대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고교생들은 ‘명문대 합격을 도와준다’는 학교 전설에 귀기울인다. 교내 동상, 교문에 깃든 전설을 살펴보면 고교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 수 있다.
교내전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는 학교 동상이다. 동상이 ‘명문대 합격’의 축복을 내린다는 설이 가장 많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시각. 서울지역 한 고등학교 2학년 장모 군과 친구들이 학교 운동장에 위용을 떨치며 서 있는 거대한 크기의 ‘백마상’ 앞에 모였다. 이들이 야밤중에 모인 까닭은?

“밤 10시 이후 백마상에 올라타면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내려와요. 특히 보름달이 뜬 날 자정에 백마에 올라타서 그 갈기를 쓰다듬으면 실제로 말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나? 그 소리를 들으면 공부를 안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간다는 전설이에요. 풍문에 따르면 옛날에 말 울음소리를 들은 선배가 딱 한 명 있었다고 해요. 성적은 중위권이었는데 수능에서 찍은 문제가 거의 다 맞아 서울대에 무난히 합격했대요.”(장 군)

장 군은 백마상에 올라타기로 했다. ‘나도 좋은 기운을 받아볼까?’란 호기에서였다. 하지만 매끄러운 백마상에 올라타기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며 10여 분 동안 백마상과 고투를 벌인 장 군. 간신히 백마상 위에 몸을 걸쳤건만 이내 균형감각을 잃고 ‘뚝’ 떨어졌다. 다행히 아래서 지켜보던 친구들과 부딪쳐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다. 장 군은 “발을 디뎠던 백마의 옆구리 부분 페인트가 벗겨졌는데 얼마 후 다시 칠해졌다”면서 “위험을 감수할 만큼 전설을 맹신하진 않지만 한 번쯤은 올라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여고에는 운치를 돋우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의 정중앙에는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인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에는 ‘동상의 가슴 부분을 만지면 명문대에 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동상을 만지기 위해선? 최적의 시기는 겨울이다. 다른 계절에는 연못물이 허리까지 찰랑거리지만 겨울에는 물이 얼기 전 연못물을 모두 빼 놓기 때문. 겨울방학에는 동상의 가슴을 만지기 위한 고3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이 학교 1학년 장모 양은 “방학 동안 틈나는 대로 동상의 가슴을 만지려 했다”면서 “전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내 수험생활에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허름한 문으로만 다닌다? 대학만 갈 수 있다면!


수험생활에서 심리적 안정은 가장 중요하다. 왠지 실패할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은 잡생각을 불러와 학습리듬을 망가뜨린다. 그래서일까? 작은 상징물이나 부질없어 보이는 소문에도 고교생들은 집착하게 된다.

경북에 있는 한 여고의 정문을 살펴보자. 바닥이 움푹 파여 비가 오면 웅덩이가 곳곳에 생기는 허름한 ‘넓은 문’과 벽돌 바닥으로 깔끔히 정리된 ‘좁은 문’이 있다. 학생들은 잘 닦인 좁은 문이 아니라 허름한 넓은 문으로 등하교를 한다는데…. 이유는 뭘까? 다음은 이 학교 3학년 이모 양의 전언.

“우리 학교에는 ‘좁은 정문으로 다니면 대학문이 좁아진다’는 말이 내려와요.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넓은 문을 이용한답니다. 비가 와서 넓은 문 쪽에 웅덩이가 생겨도 폴짝 뛰어 넘어가는 게 차라리 나아요. 혹시라도 좁은 문을 이용했다가 대학입시에서 부정 탈 수도 있잖아요.”

어느 날 무심결에 좁은 교문으로 지나갈 뻔 했다는 이 양. 오른발이 좁은 문을 향한 것을 보고 ‘아차!’ 싶었던 그는 기지를 발휘했다. 재빠르게 몸을 틀어 넓은 문 쪽으로 왼발을 뻗었다. 다행히 넓은 문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미신 같은 이야기라 믿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냥 무시하기도 찝찝하다”고 했다.

교실 내 화분이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서울 혜성여고 2학년 교실에 있는 커다란 화초는 귀빈 대접을 받는다. 청소를 할 때나 장난을 칠 때도 화초 주변에 다다르면 학생들이 돌연 다소곳해진다. 학생들은 화초를 성심껏 가꾸고 흰 도자기 화분을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바로 ‘화초의 이파리를 만지고 대입 논술이나 면접고사를 보면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입시를 앞둔 고3들은 몰래 이 교실에 숨어들어 화초 잎을 살짝 쓰다듬고 간다고 한다. 이 학교 2학년 홍진희 양(18)은 “내신이 3등급인 고3 선배가 화초 잎을 만지고 논술고사에서 대박을 터뜨려 소위 ‘신촌 리그’에 속한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올해 대학별고사를 보는 순간까지 화초를 잘 가꿔서 화초의 ‘영험한 기운’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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