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의문의 화재사건, 증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4일 14시 51분


미제 사건 대검 화재수사지원팀 해결

2004년 12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다. 1층에서는 사망자가 없었지만 유독가스가 통로를 타고 올라가 11층에 있던 70대 남성 1명이 사망했다. 불이 날 당시 집에 동거녀와 함께 있었던 서모 씨(40)가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가스레인지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집이 완전히 불타 증거가 남아있지 않았고 동거녀는 서 씨 말이 맞다고 증언하는데다 곧바로 서 씨가 잠적해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서 씨가 6년 만에 나타나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여전히 불을 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동거녀와 말다툼을 하다 방에 2~3L의 휘발유를 뿌린 다음 몸싸움을 하던 중 갑자기 불이 났다"고 진술을 바꿨다. 담당 검사는 서 씨가 불을 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어 집으로 돌려보낸 뒤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 화재수사지원팀에 자문을 요청했다.

화재수사지원팀은 지난해 1월 일선 검찰청의 화재사건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출범했다. 전국 검찰청에서 공모해 선발한 강정기 수사관(39)과 소방방재청이 파견한 황태연 조사관(39) 등 팀원은 단 2명이다.

황 조사관은 미국화재조사관협회(NAFI)에서 시행하는 국제화재폭발조사관자격(CFEI)를 취득한 베테랑이고 강 수사관도 중앙소방학교에서 12주 교육을 수료한 뒤 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안상훈 대검 과학수사담당관은 "화재 사건은 증거가 다 소실돼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선 검사들이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팀을 꾸린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1년간 현장감식 6건, 수사자문 13건, 재연실험 4건, 컴퓨터 시뮬레이션 2건 등을 완벽히 수행하며 활약했다.

서 씨도 이들의 '과학 수사'를 따돌릴 수는 없었다. 지원팀은 당시 실내온도가 20도였다는 기록과 서 씨가 동거녀와 20여 분간 몸싸움을 벌였다는 진술에 주목했다. 이런 온도와 밀폐된 공간에서 휘발유가 뿌려지고 유증기가 가득 차면 자그마한 충격에도 강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러나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녹아내리는 등 폭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또 서 씨는 얼굴에만 작은 화상을 입었을 뿐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지원팀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실험을 한 뒤 "가스레인지 폭발로 불이 났다"는 서 씨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보고서를 수사팀에 보냈다. 서 씨는 결국 "내가 불을 질렀다"고 자백했고, 검사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로 서 씨를 구속 기소했다.

강 수사관은 최근 검찰 내부전산망(e-프로스)에 이런 내용을 소개하며 "전국에 계시는 검사님! 이제 캐비닛을 여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우리 팀의 존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미제사건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달라는 뜻으로 글을 올렸어요." 그는 "검찰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우리 팀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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