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죽전고 2학년 김동건 군(18)은 중학생 때 웹 디자이너를 꿈꿨다. 정보처리기능사,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따면서 ‘내가 오직 잘하는 일은 컴퓨터’라고 확신했다. 중3 때는 공부도 포기했다. 컴퓨터 특성화고 입시를 위해 컴퓨터학원에서 살다시피 한 것. 내신 성적이 낮아 웹 디자인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만이 특성화고에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입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웹 디자인 대회. 그는 심혈을 기울여 밤새 만든 디자인 작품을 제출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그는 본선에도 들지 못했다. 그가 꿈꿔온 미래가 나락으로 뚝 떨어졌다.》 He was small, had no luck at all (작고 운이 없었던 소년, 록 음악에 빠지다)
김 군은 애타게 바라던 목표와 함께 의욕까지 전부 잃었다. 고1이 된 뒤에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목적을 찾지 못했다. 그를 위로해준 건 음악이었다. 김 군은 영국 록그룹 퀸의 노래 ‘스프레드 유어 윙스(Spread Your Wings)’를 수백 번 반복해 들었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호텔청소부는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해요. 지루한 현실을 탈피하고 새로운 꿈을 갖고자 하는 모습이 저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했죠.”
김 군은 점점 록 음악에 빠져들었다. 퀸,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비틀스 등 전설적인 외국 록그룹에 열광했다. 새벽 3, 4시가 넘도록 음악을 듣다 보니 학교생활은 엉망이 됐다. 밤새 음악을 듣고 수업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공부를 할 때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더 집중했다. 성적은 전교 100등대, 내신 평균 4∼5등급을 맴돌았다.
고1 여름방학, 김 군은 영국 록그룹 ‘오아시스’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을 졸라 허락을 받고 자신의 용돈으로 록 페스티벌 티켓을 구입했다. 오아시스 공연 중 백미로 불리는 히트 곡 원더월(Wonderwall)을 ‘떼창’(모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뜻하는 은어)하려고 공연 며칠 전부터 노래 가사를 달달 외웠다. 공연 당일 그는 관객 수백 명과 함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네가 날 구원해 줄 유일한 사람이야)!”
그는 처음 가본 공연장에 흠뻑 빠졌다. 드럼 소리가 그대로 심장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록 페스티벌에 꾸준히 참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티켓 값은 용돈에 비해 턱없이 비쌌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저렴한 가격에 진행되는 인디밴드 공연을 보러간대도 왕복 3시간이나 걸렸다. 가장 큰 문제는 도저히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 그때, 묘안이 떠올랐다.
“성적을 올리자. 부모님께 죄송하지 않도록 멋진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나도 공연을 또 보러올 수 있을 거야.” Spread your little wings and fly away (작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다)
오아시스 공연장에서 인생의 ‘열정’에 감염된 김 군. 그의 첫 목표는 단순했다. ‘지금보다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려 당당히 공연을 보러가자’는 것.
불이 붙었다. 수업시간에 무섭게 집중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준 내용을 공책에 베껴 적느라 여념 없을 때, 그는 펜을 내려놓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김 군은 “칠판 필기는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알찬 정보에 집중했다”면서 “선생님이 판서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는 순간 재빨리 중요 내용을 옮겨 적었다”고 말했다.
성적이 크게 올랐다. 김 군의 말에 따르면 고1 1학기 내신에서 전교 100등대였던 그는 2학기 중간고사 때 반 2등, 전교 20등권에 진입했다.
한 번 성적이 오르니 자신감이 생겼다. 2학년이 되자 ‘한 과목이라도 전교 1등을 해보자’란 목표를 잡았다. 영어과목에서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친구를 보면서 ‘단 한 과목만이라도 전교 1등을 꼭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그는 인문계열 학생들만 선택해 응시학생이 적은 사회과목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자율학습시간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배운 경제, 세계사 과목 교과서를 펴고 한 문장씩 곱씹어가며 암기했다. 그가 만든 ‘사회노트’는 스스로 이해한 순서대로 학습내용이 차곡차곡 정리됐다. 고2 1학기 중간고사에서 그는 경제 90.2점, 세계사 94.5점을 받았다.
“수행평가, 중간, 기말을 합산해 전교 석차를 내보니 경제는 39명 중 2등, 세계사는 167명 중 17등을 했어요. 아쉬웠죠. 하지만 예전처럼 절망하진 않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공부 때문인지 ‘정보사회와 컴퓨터’ 과목은 만점을 받아 전교 494명 중 1등을 차지했거든요(웃음).”
지금 그는 하고 싶었던 일에 하나씩 도전하고 있다. 성적이 오르니 두려움도 사라졌다. 지난해 여름에도 그는 훌쩍 오른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록 페스티벌을 당당히 관람했다. 음악이 좋아 틈틈이 통기타 연습도 한다. 교내 사진부 부장, 국내 유일 고교생 주간신문 P·A·S·S의 고교생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스프레드 유어 윙스’의 가사처럼 마음의 자유를 찾은 것 같아요. 세상에는 제가 갈 수 있는 길이 굉장히 많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다음 목표는 열심히 고3 생활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해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 열심히 공부하면 꿈은 꼭 이뤄지겠죠?”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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