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민망한 현수막 광고에 ‘클린 메스’

  • 동아닷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고개 숙인 남성… 예쁜이 수술… 떼인 돈 한방에”
■ 서울시, 규제조례 추진

“민망해서 눈을 어디 둬야 할지….”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직장인 이형철 씨(33). 그의 집 앞에 세워진 현수막 지정 게시대에 언제부턴가 황당한 내용의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세상 위에 우뚝 선 남자’, ‘남성을 위한 남성’ 같은 민망한 비뇨기과 광고 현수막부터 ‘예쁜이 수술’ 같은 산부인과 광고, ‘한 방에 갚아 드립니다’ 같은 채권 추심 광고까지 현수막 지정 게시대 절반 이상이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빨강 노랑 등 원색 계통으로 디자인돼 눈에 바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 씨는 “‘공해’를 넘어 아이들 교육상 문제가 있다”며 항의했다.

○ ‘고개 숙인 남성’ 민망한 현수막 광고

항의가 빗발치자 서울시가 최근 시내 473개 현수막 지정 게시대 속 2142개 광고 내용을 조사했다. 그동안 전수조사는 해왔지만 내용 및 디자인과 관련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시대가 없는 강남구와 전자 게시판이 도입된 서초구를 제외한 23개 자치구 내 현수막을 모두 조사했다.

조사 결과 2142개 현수막 광고 중 상업광고가 77%(1654개)로 공익광고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광고 중 가장 많은 것은 비뇨기과 광고로 전체 317개(19%)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남성 중심’ ‘고개 숙인 남성’ 등 자극적인 광고문구를 담았다는 것이다. 비뇨기과 광고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구로구로 전체 광고 170개 중 35개가 ‘남성’을 홍보하는 광고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에는 이른바 ‘기업형’ 광고를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백호 행정과장은 “M비뇨기과의 경우 서울시내 18개 자치구에 도배하다시피 광고를 했다”고 말했다.

학원 및 유치원 광고(285개), 병원(200개)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산부인과 광고 중에는 일명 ‘예쁜이 수술’이라 불리는 질축소술을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현수막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식의 대출 및 채권 추심 광고 현수막은 82개로 도봉구(16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 현수막 광고 단속 위해 법 개정도

현수막 지정 게시대는 시내에 번잡하게 널린 현수막 광고를 한곳에 모아 도시 미관을 정리해보자는 취지로 설치된 것이다. 운영 및 게시 권한은 구청장에게 있으며 각 자치구는 조례를 만들어 이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서울시내 현수막 지정 게시대 473개 중 절반가량인 221개(46%)를 민간업체에서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자치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은 127개(26%)에 그쳤다. 자치구 관계자는 “2주간 현수막 광고하는 비용이 약 15만 원”이라며 “일단 많이 광고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내용과 디자인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권영규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최근 구청장들과의 정기회의 때 게시대 광고를 규제할 것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권고 내용은 △사회적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광고문구와 디자인에 대해 현수막 게시를 허가하지 않는 것 △중소 자영업자를 위해 기업당 1개 광고만 허용하는 것 등이다. 권 부시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광고 내용 심의를 담은 ‘표준조례’를 만들 것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는 구청장 소관 업무인 옥외광고 관련 권한에 시장 권한을 포함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해 자치구 관계자는 “자치구 소관 업무를 시가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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