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자생하는 곤충-새-개구리 등 각종 울음소리 담은 ‘자생생물 소리도감’ 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3일 03시 00분


“여치가 암컷 유혹땐 치치치치∼ 울어요”

《최근 국내 연구진이 한반도에 자생하는 곤충 새 개구리 등의 각종 울음소리를 담은 ‘한국 자생생물 소리도감(Sound Guide)’을 발간했다. ‘소리도감’이란 생물들의 울음소리를 의미별로 녹음해 연구자료 등으로 활용하는 것. 선진국에서는 울음소리를 통해 기존에 파악하지 못했던 생물의 다양한 행동양식을 연구하는 등 생물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는 토종 자생생물의 울음소리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환경연구사가 사람의 귀로 울음소리를 식별하기 어려운 곤충을 투명상자에 넣어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 소리로 판단한다 ‘생물음향학’

“숲 속에 숨어 있는 곤충이 내뿜는 미지의 소리를 녹음기에 담는 순간 희열이 느껴집니다.”

22일 국내 최초로 곤충이 내는 각종 울음소리를 담아 ‘한국 자생생물 소리도감-곤충 편’을 출간한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환경연구사(41)의 말이다. 생물자원관에 따르면 곤충이 내는 소리는 의사소통을 위한 일종의 언어. 이에 따라 생물학자 사이에서는 갈수록 생물의 소리와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생물음향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생물자원관 연구진은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전국을 누비며 총 34종의 곤충 소리를 녹음했다. 연구 초기 1cm의 작은 곤충을 찾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곤충은 주로 밤에 우는 데다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달아나거나 울음을 멈췄다.

곤충으로부터 최소한 1m 이내에 접근해 1분 이상 녹음을 해야 해당 곤충 울음소리의 의미와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김 연구사는 “한 발자국 가다가 울음이 멈추면 서고 다시 울면 움직이는 행동을 20∼30분은 해야 1m 내로 접근해 녹음을 할 수 있다”며 “실베짱이 어리쌕쌔기 등의 곤충은 몸이 워낙 작고 울음소리도 초음파 음역대라 녹음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녹취한 곤충 소리를 분석한 결과 국내 자생 곤충은 △암컷을 유혹하거나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거나 △수컷과 싸울 때 등 세 가지 행위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졌다. 여치의 경우 ‘치치치치치’ 식의 음절이 긴 울음소리는 ‘섹스 어필’을 해 암컷을 유인하거나 주변의 수컷에게 자신의 성적(性的) 우수함을 알리는 데 사용된다. 바로 옆에 암컷이 있으면 울음소리는 ‘구애 음’으로 변해 ‘즈르르르르’ 등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반대로 수컷이 다가오면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키키키키키’ 등 거친 소리를 낸다. 곤충은 반경 2∼3m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울음소리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한 마리가 울면 박자를 맞추면서 소리가 비는 순간에 가장 큰 울음소리를 낸다.

○ 연구실이 ‘곤충 콘서트장’

야외에서 사람의 귀로 울음소리를 식별하기 어려운 곤충은 포획해 연구실로 가져온 후 사육을 하면서 소리를 녹음했다. 하지만 곤충을 잡아서 연구실로 가져온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해당 곤충이 잘 울 수 있도록 속칭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가로, 세로 50cm의 정사각형 투명상자를 준비한 후 휴지를 깔고 물을 뿌려 내부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한다. 건조하고 더우면 곤충은 금방 죽는다. 이후 곤충을 잡은 지역의 꽃, 풀 등을 내부에 적절히 배치한다. 그리고 녹음기를 투명상자의 1m 앞에 설치한다. 작은 곤충의 울음소리는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 영역대이기 때문에 이를 녹음할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바뀐 환경 탓에 곤충이 울지 않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가장 애를 먹인 곤충은 ‘베짱이붙이’. 연구진은 3년 동안 ‘베짱이붙이’를 찾아 전국을 헤매다가 지난해 9월에서야 거제도에서 이 곤충을 잡았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환경을 맞춰줘도 베짱이붙이는 한 달 넘게 울지 않았다. 꽃가루와 과일, 죽은 곤충 등 먹이까지 공급하며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연구진은 다시 전국을 누벼 암컷을 잡아온 후 이를 상자 안에 넣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암컷이 나타나자 베짱이붙이는 울기 시작했고 연구진은 환호했다.
생물자원관 김화정 환경연구사(42)의 경우 2009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강원 평창, 울릉도, 제주도 등을 누비며 토종새 30종의 울음소리를 녹음했다. 새는 종류마다 우는 소리의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까마귀는 자신의 세력을 알리는 데 울음소리를 이용한다. 참새목들은 대부분 암컷을 부르기 위해서 운다. 김 연구사는 “새는 눈치가 빨라 조금만 접근해도 날아가기 때문에 군복 등으로 완전 은폐를 한 후 10m까지 접근해 녹음해야 한다”며 “새 중에서 가장 녹음하기 힘든 대상은 들꿩”이라고 말했다. 들꿩은 산 속 깊이 살며 조심성이 많아 조금만 소리가 나도 사라진다. 울 때도 소리가 워낙 작아 잘 들리지 않는다. 생물자원관은 생물 울음소리 음원을 모아 ‘생물소리은행(sound library)’을 2014년까지 구축할 방침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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