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교육정책 3년’ 현장의 목소리]<上>학부모 10명의 사교육비 솔직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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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고1 딸 둔 강북 엄마 “별로 안시켜도 月60만원, 사교육비가 줄어? 에이…”

《 동아일보가 최근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이명박 정부 집권 3년 평가에서 교육 분야는 평균 점수를 밑돌았다. 5점 만점에 2.76점. 교육정책 모토였던 ‘자율과 경쟁’이 정착되기는커녕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문가만 문제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교육정책의 대상이자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도 할 말이 많다.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뒀던 사교육 경감 대책, 학교 자율화, 진보 교육감의 출현으로 불거진 교육계 갈등을 둘러싼 현장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우리 애는 별로 안 하는 편인데….” 취재진과 만난 학부모 10명은 모두 다른 가정보다 사교육을 적게 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평균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지출액은 적게는 40만 원, 많게는 120만 원이 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 원. 정부는 조사 이래 처음으로 수치가 줄었다며 잔뜩 고무됐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학부모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영어 수학 학원은 기본


김은경 씨(47·여·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강남 한복판에서 고2 아들과 중3 딸아이를 키운다. “남들처럼 고액 과외는 안 시키고 학원만 보낸다”고 했다. 아들과 딸의 학원비로 매월 각각 80만 원, 30만 원을 쓴다.

아들은 단과학원에서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듣고, 딸은 수학 학원만 다닌다. “굳이 학원을 보낼 생각이 없는데,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보낸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려면 혼자서는 힘들다고 한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방학 때는 학원 수업 시간이 늘어 둘 앞으로 150만 원 이상 드는데, 논현동에 있는 학원이라 대치동보다는 싼 편”이라고 했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서희숙 씨(55·여)도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 학원비로 이달에만 65만 원을 썼다. 이나마 “교육열이 높은 동네가 아니라 강남에 비교하면 얼마 안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 씨의 아들은 영어 수학 학원만 다닌다. 영어는 35만 원, 수학은 30만 원. 지난달에는 사교육업체에서 진행하는 ‘자기주도 학습 캠프’에 보냈다.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9박 10일 캠프에 130만 원을 냈다.

서 씨는 “광고로 학습 캠프가 있다는 걸 처음 알고 아이를 보냈는데, 주변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니 중학교 때 이미 다들 다녀왔다고 하더라. 아들이 캠프에 가보니 초등학생들도 왔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정부가 사교육을 없애려고 도입한 자기주도학습전형도 사교육 업체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 현실과 거리 먼 정책


학부모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정주연 씨(50·여·서울 강북구)는 입학사정관제나 자기주도학습전형이나 이름만 그럴듯하고 효과는 없다고 본다. “애들을 특목고나 자율고에 보낸 친구가 많은데, 과외 안 시키면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한다. 사교육이 준다는 말은 믿지도 않는다.” 정 씨 역시 고1 딸 학원비로 60만 원을 쓰지만 주위에 비하면 적게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둘을 키우는 최미영 씨(47·여·서울 노원구)도 “입학사정관제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대학이 학교 내신이나 수능 점수로 뽑지 않나. 결국 1점이라도 더 올려야 하니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정임 씨(42·여·서울 관악구)는 방과후 학교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아들이 중학교 때 과학중점학교에서 과학과 발명 수업을 들었는데 꽤 저렴한 비용에 괜찮은 수업을 받았다. 그런데 2년 만에 정부 지원이 끊겼다며 폐지됐다. 지금은 정규수업과 다를 바 없는 방과후 학교 수업을 믿을 수 없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충북 옥천군에 사는 박기영 씨(43·여)는 자녀 셋을 키우지만 사교육은 전혀 안 시킨다. 부모 욕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방과후 학교가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시골에까지 유능한 강사가 올 리 없다. 선생님들은 업무 부담이 커 힘들다고 하고…. 학교 수업만 제대로 진행돼도 좋은데 그런 정책보다는 사교육 줄인다는 얘기만 하니 답답하다.”

○ 뒤처지지 않으려면 선행학습은 기본


지방이라고 수도권과 다르지는 않다. 경남 창원시의 박일권 씨(43)는 고등학생이 되는 큰아들의 반 배치고사 시험지를 보고 후회했다. 중학교 과정뿐만 아니라 고1 과정에서도 문제가 나왔다며 “국영수 선행학습을 너무 안 시킨 게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는 더 신경 써야겠다”고 했다.

지금도 큰아들 앞으로 영어 수학에 30만 원씩 매월 60만 원이 들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둘째 아들에게도 50만 원이 든다. 그런데도 박 씨는 앞으로 학원비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전북 정읍시의 김미인 씨(41·여)는 초등학생 자녀가 둘. 국영수를 가르치는 보습학원비로 한 명당 20만 원씩을 쓴다. 여기에 책값 등을 더하면 한 달 교육비가 50만 원을 훌쩍 넘긴다.

김 씨는 “50만 원은 한 달 생활비의 70%가 넘는 돈”이라며 “학원비에 보탤 요량으로 틈나는 대로 이웃집 하우스 농사일을 거든다”고 말했다. 특기 적성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학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더 들어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의 이미선 씨(41·여)는 EBS와 수능을 연계하는 정부 방침 덕을 보는 편이다. 고3이 되는 큰딸이 지난해부터 학원을 끊었다. “학교에서 오후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EBS로 공부한다. 딸이 혼자 해보겠다고 해서 믿고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 씨도 한 달에 과외비로 100만 원을 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과목별 가정학습지로 보습 과외를 받고 영어 학원에 다닌다. 4학년 아들은 여기에 태권도 학원을 더 다닌다. 이 씨는 “초등학생의 과외비가 더 든다. 시험을 보면 웬만한 아이들은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최명숙 씨(48·여·전북 전주시)도 초등학생 자녀에게 학원비를 더 쓴다. 중학생 딸은 영어 수학 학원만 보내지만 초등학생 딸과 아들에게는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고 피아노 학원까지 보낸다.

최 씨는 “유치원 초등학생 학원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부모가 많은데 정부는 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줄이기에만 급급하니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 “대책마다 사교육… 사교육… 근본인 공교육 강화안은 없어” ▼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 비판


“사교육비 경감에 치우쳐 공교육 강화 방안은 핵심을 비켜가고 있습니다”, “방과후 학교 등으로 사교육을 대체할 뿐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23일 열린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는 교원 및 학부모 단체, 전문가의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을 경감시키는 시안을 내놓았지만, 본질인 공교육 강화 대책은 논의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부분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초 발표한 EBS 수능 연계 강화책이 대표적이다. EBS와의 연계율을 70%까지 올려 사교육 없이 수능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어렵게 나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허탈해졌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정부는 외국어고와 국제고 입시에도 손을 댔다. 2011학년도 입시부터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해 영어 성적과 면접만으로 뽑고 교과 지식을 묻는 형태의 구술면접이나 인증시험, 수상실적을 반영하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이 같은 방침을 어겼고,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은 일부 학교의 경쟁률이 오히려 떨어졌다. 자기주도학습전형에 대비하는 서류·면접 컨설팅 등 새로운 형태의 학원도 생겼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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