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복지’ 왜 미흡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韓 - 美 세금비중 비슷할때 복지지출은 美가 1.7배

200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2번째로 낮다. 이는 복지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각국의 경제력 차이나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용 재원을 고려해 새로 분석한 지표로 보니 이 격차는 크게 준다. 한국은 일본과 복지 지출이 비슷했고 다른 선진국과의 차이도 줄었다.

다만 새로운 지표로 봐도 전체 복지 예산 중 건강보험에 쓴 돈의 비중은 여전히 50%에 육박해 선진국에 비해 편중이 심했다. 이 때문에 육아나 주택 같은 다른 사회안전망에 쓸 돈이 부족해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를 낮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지출이 급증하는 것을 막아 이 재원으로 다른 복지 부분의 지출을 늘려야 복지 체감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 건강보험만 선진국 궤도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비중은 GDP의 7.5%로 OECD 평균인 19.3%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비중이 27∼28%에 달하는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복지 강국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고 일본(18.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 수준에 따른 차이를 제외하고 새롭게 만든 평가지표로 분석할 경우 조사 대상 18개국 중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은 여전히 17위로 최하위권이지만 복지 상위국가와의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우리나라의 2007년 1인당 GDP 수준은 스웨덴 일본의 1960년대,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197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 이 시점 각국의 복지 지출 비중을 보면 캐나다는 14.4%, 프랑스는 19.2%, 영국은 16.7% 정도다. 일본은 7.9%로 한국(7.5%)과 큰 차이가 없다.

전병목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의 복지 지출 수준은 비슷한 사회 문화 구조를 가진 일본과 유사해 크게 낮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유럽권과 격차가 벌어진 것은 한국보다 수십 년을 앞서 연금제도를 도입해 연금지급액이 높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정부 통제를 벗어난 연금지급액을 낮추기 위해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같을 때도 우리나라가 건강보험에 쏟는 돈의 비중은 여전히 과도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만 정상 궤도에 올려놓느라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쓸 여력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국민들에게 1년간 들어간 의료비가 GDP의 7%인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지 않다”며 “의료 기술 발달과 고령화로 정부가 국민들의 의료비로 쓰는 돈이 급증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연금 제도가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하면서 연금만 제대로 받았어도 빈곤층에 빠지지 않았을 노인층과 저소득층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느라 육아나 실업자를 위한 직업 교육 같은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하 한국보건복지연구원장은 “1973년에 국민연금을 도입하려다가 당시 오일쇼크로 연금제도가 15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균형 있는 복지 지출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선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돈을 얼마나 썼느냐’ 하는 수준의 논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쓸지를 시급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낼 만큼 내는데 미흡한 복지 혜택


국민이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낸 돈의 비중이 비슷한 연도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복지 지출 비중은 소득이 동일한 시점과 비교했을 때보다 일본과의 격차가 벌어진다. 일본의 경우 1983년이 국민부담률이 한국과 비슷한 해로 같은 해 GDP의 11.7%를 복지재정에 투입했지만 한국은 7.5%에 그쳤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 국민들과 비슷한 정도의 세금을 내고도 복지 혜택은 덜 받았음을 의미한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가 예산에서 국방비와 사회간접자본(SOC)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GDP의 2.7% 정도로 일본의 0.8%에 비해 3배 이상 많고 OECD 평균(1.4%)의 두 배 수준이다. 대기업 지원이나 SOC 사업 같은 경제 관련 지출은 GDP의 6.4%로 OECD 평균(4.5%)의 1.5배 정도다.

김규옥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우리나라는 정부의 보조로 버스나 지하철비, 전기나 가스료 같은 공공요금이 싼 편인데 이는 정부의 복지 지출로 잡히지 않아 실제보다 복지 지출이 낮게 보이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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