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K 군은 요즘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다. 성적이 상위권인 K 군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게 희망. K 군 꿈은 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고교에 진학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K 군 집(울산 남구 신정동) 인근에는 고교가 밀집해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꼽힌다. 비록 집에서 3km가량 떨어진 홍명고(울주군 청량면 용암리)로 배정받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올해 자신처럼 원하지 않는 학교로 강제 배정받은 학생이 전체 고교 신입생의 11%(1458명)에 이르기 때문.
문제는 K 군이 배정받은 학교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라는 것이다. 홍명고는 울산시가 2002년부터 조성 중인 신 일반산업단지 가운데에 있다. 학교 뒤 야산은 이미 잘려 나가 공사장 먼지가 바람을 타고 교실로 들어온다. 창문을 닫아도 선생님 설명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도 심각하다. 이 같은 열악한 교육 여건 때문에 신입생 가운데 3명은 전학하거나 자퇴를 한 뒤 유학을 가버렸다.
참다못한 학교와 학부모 대표 등은 7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터를 산업단지에 편입시킨 뒤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교 법인 소유 용지 보상비와 학교 이전비는 356억 원. 울산시는 “추가 보상이 이뤄지면 입주 예정 기업 부담이 늘어난다”며 거부했다.
홍명고는 울산석유화학공단과 온산공단에 인접한 곳에 1990년 3월 개교했다. 공해로 당시에도 문제가 제기됐으나 울산시와 울산시교육청은 학교 건립 허가를 내줬다. ‘홍명고 문제’를 풀 1차적인 책임도 이들에게 있다. 학교 법인 역시 적절한 보상가를 제시하며 이전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학업에 매진해야 할 K 군을 ‘학교 가기 싫어하는 학생’으로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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