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키워드가 있는 책읽기]3월은 잔인한 달··· 재수생활의 고통 담담히 수용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4일 03시 00분


■ 이슈 따라잡기 ■ 꽃 피는 봄, 첫 실패로 우울한 그대에게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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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치 못하게 재수를 하게 됐어요. 전문대 여러 곳에 붙었지만 4년제 대학에 가라는 부모님 말씀 때문에…. 솔직히 재수는 자신 없어요. 내 삶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모르겠어요. 대학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돼요. 요즘.(ID codmsd*****)

#. 이번에 대학에 합격한 신입생입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대학생활의 로망이니 어쩌니 그런 소리는 누가 한 건가요? 늦은 감이 있지만 이렇게 힘들 바에야 재수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 학교 계속 다니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요. 엄마랑 전화할 때마다 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울어요.(ID park*****)

따뜻한 3월.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이런 글이 올라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지난 12년간 펼쳐진 레이스의 종착점에서 난생 처음 ‘실패’를 맛본 학생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위로를 구합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친구들에겐 뾰족한 조언을 들을 수 없습니다. ‘너도 힘들지?’ ‘나도 그래’ 공감의 댓글은 이어지지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실패로 우울한 젊은이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입니다. 그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05년 김 교수가 연구년을 맞아 미국에 있을 때 한 학생에게 보냈던 e메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슬럼프’란 제목의 e메일을 통해 학생에게 보낸 글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가 보내는 메시지를 인생에서 첫 번째 실패를 경험하는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 책 속에서 키워드 찾기 ■ 재수는 실패인가…대학은 결승선인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3월은 재수생에게 가혹한 시기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재수생은 재수종합반에 등록합니다.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교과서와 기출문제집을 꺼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마음을 잡아야 할 때인 건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난 패배자’란 생각과 ‘반드시 성공해서 저들을 이기리라’는 생각이 반복되지요.

“재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넌 두 가지라고 대답했지. 하나, 주위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둘,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것. 이 두 가지만 아니면 다른 것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고…. 하지만 그거 알아? 이 두 가지가 재수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은 그게 인생의 핵심 문제야. 이런 생각도 해보자. 내년에 네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주위의 기대가 모두 충족되어 사라질까? 아닐 걸? 오히려 그때부터 더 큰 기대가 생겨날 거야. 또 시간이 지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봐. 그땐 기대 정도가 아니야. 자기 인생뿐 아니라 가족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걸? 책임은 기대보다 무거워. 잔인해.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야. 지금 네가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은 재수를 하건 하지 않건 네가 일생 동안 짊어져야 할 그것들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지. 다만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부담스런 기대를 조금 더 일찍 지게 됐다는 것뿐.(중략) 길게 보면 너의 재수 경험은 주위와 스스로의 기대와 책임에 부응하는 것, 그것을 위해 자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어. 지금은 1년이 늦었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결국 더 빨리 성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기회 말이야. 재수를 하지 ‘못한’ 친구들보다 훨씬 풍요한 삶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거라고. 이제 좀 위안이 돼? 하지만 위안받기는 아직 일러. 이 글이 진정 위안이 되려면 네 ‘오늘’이 변화해야 하거든. 너에게 주어지는 기대에 합당한 자기관리를 시작해. 내일부터가 아니야. 지금부터야. 내일은 지금, 오늘이 만드는 거라고. 이제 한숨을 거두고, 바로 지금부터 너의 오늘을 바꿔.”(224∼231쪽)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대학에 등록하고 입학식을 치른 뒤에도 고민인 학생이 많습니다. 100% 자신의 선택으로 된 대학을 결정하지 못한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에 불만이 생깁니다.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더 좋은 대학, 학과를 바라보며 재수, 반수를 결심합니다. ‘대학이 바뀌는 순간 나의 구질구질한 인생도 바뀌게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는 눈에 띄지 않았다. 불러주는 대학팀이 없어서 애를 태우다 가까스로 명지대에 입학했다. 허정무 감독이 2000년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했을 때 사람들은 “명지대 감독하고 바둑 두다가 뽑았느냐?”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인기절정의 ‘국민 캡틴’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에 발탁된 사연이다. 그는 어렵게 들어간 대학,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그에게 대학은 황홀한 전성기를 알리는 시작이었다.(중략)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많은 학생이 대학을 마치 인생의 결승점인 줄 안다. 그동안 얼마나 ‘대학, 대학, 대학’ 하며 달려왔던가. 매년 3월 2일 입학식을 치르는 대학 신입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한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 만족하는 친구들은 이제 그 학벌로 인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간주하고, 만족하지 못한 친구들은 방황하거나 더 낫다고 여겨지는 결승점을 향해 반수나 편입을 준비하기도 한다.(중략) 대한민국에서 학벌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슬프지만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야 성공한다’는 말이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굳이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면 특정 영역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효과’가 정확히 그렇다. 좋은 대학, 인기 학과의 졸업생이라는 스펙은 취업할 때만 도움이 될 뿐, 일단 취직하고 나면 얼마나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업무를 솜씨 있게 처리하느냐에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학벌 이외의’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대학은 그대의 경쟁력을 쌓는 출발선일 뿐이다.”(259∼266쪽)

■ 읽고 생각하기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빠가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내 스무 살에 대한 후회 때문이기도 해. 그 후회란 단지 내가 더 성실하게 생활하지 못했다거나, 그때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아쉬움이 아니야. 누군가 내게 과거의 나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를 걸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만약 스무 살의 나에게 딱 한 번만 전화를 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청춘의 나에게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러므로 너무 흔들리지 말라고. 담담히 그 성장통을 받아들이라고. 그 아픔을 훗날의 더 나은 나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라고.(김 교수가 스무 살이 된 아들에게 쓴 편지 중)

어려운 시기를 겪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A4 1장 분량으로 써보세요. 여러분은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한마디를 하고 싶나요?

기자의 e메일로 위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보내준 독자 중 다섯 분을 선정해 책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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