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학부모총회, 이젠 ‘필수과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입시 정보 얻고··· 각종 교내활동 선점하고···


《최근 학부모총회를 입시정보를 얻기 위한 전초전으로 여기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고입에서 교사추천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내신에서 서술형평가의 비중이 늘어나는 변화에 따른 현상으로 파악된다.》
학부모총회가 달라지고 있다. 매년 3월 셋째 주 주로 열리는 초중학교 학부모총회는 원래 학부모들이 자녀의 새 담임교사를 만나 첫인사를 나누고 한 해 학사일정과 학교생활 전반에 관한 사항을 전해 듣는 자리. 하지만 요즘에는 학부모총회를 담임교사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자리로 여기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학부모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대입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비중 있게 살펴보고 고입에서도 교사추천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등 담임교사의 재량권이 늘어나는 최근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른 것. 또 내신에서 서술형평가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달라진 시험 및 평가방식에 관한 구체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학부모총회에 ‘필사적’으로 참여하는 직장어머니도 적잖다.

○ 아이의 고입, 학부모총회에 달렸다?

17일 열린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반 학부모총회. 담임교사가 “올해 1학기부터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수시평가를 도입한다”면서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평가를 치를 것”이라고 설명하자 곧바로 학부모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단원별 평가는 기존 지필고사랑 같은 방식인가요?” “시험엔 몇 문제가 나오나요?” “객관식 문제도 포함되나요?” “가정에선 어떻게 준비를 시켜야 하나요?”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질문에 일일이 답한 담임교사는 결국 “매일 그날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숙제를 내준 뒤 이를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할 것”이라며 “평상시 수업 때 진행되는 발표나 토론, 글쓰기 활동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부모총회가 끝난 뒤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눈 얘기는 “새 담임선생님이 어떤 것 같더라”는 막연한 내용보다는 “평소 영어와 수학에 집중했는데 올해는 전 과목을 고르게 지도하는 보습학원이나 매일 숙제를 봐주는 공부방을 더불어 다니게 해야 겠다”는 학습 관련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부모총회에서 담임교사에게 던지는 학부모들의 발언내용이 더 구체적이고 ‘독하게’ 변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우리 아이가 참 성실한데 얼핏 산만한 느낌을 줄 때도 있는데요. 내성적이고 겸연쩍어 그러는 것이니 선생님께서 예쁘게 보아 주세요”하고 아이를 ‘부탁’하는 학부모가 대세였으나, 최근에는 자신의 아이가 특목고 또는 자율고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아이를 직접 ‘세일즈’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특히 자녀의 고입을 코앞에 둔 중3 학부모들이 학부모총회에 보이는 열의는 대단하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는 학부모총회를 ‘자녀의 성공적인 고입을 돕는 자리’로 여기기도 한다. 학부모총회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담임교사에게 다가가 “아들이 초등 저학년 때부터 과학에 흥미가 많았어요. 요즘엔 과학고 진학을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세요”라고 ‘주문’하는 학부모의 모습이 그것.

최근 중3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총회에 다녀온 어머니 P 씨(43·여·서울 강남구)는 “고입에서 눈여겨보는 교사추천서는 학생의 평소 학교생활을 관찰한 구체적 사례가 포함돼야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안다”면서 “담임교사가 내 아이의 뚜렷한 목표를 인지하고 평소 생활모습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과학고, 외고 등을 직접 언급했다”고 말했다.

학부모총회를 입시정보를 얻기 위한 ‘전초전’으로 여기는 학부모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는 학부모총회 때 학부모에게 나눠줄 60쪽 안팎의 학교소개 책자 중 절반가량을 고교입시정보로 구성하기도 했다.

○ 학부모 교내활동에도 ‘중요보직’이 있다?

학부모총회는 학부모들이 향후 1년 간 각종 교내활동에 참여해 봉사할 학부모를 뽑기도 하는 자리. 그런데 몇 개의 ‘주요보직’을 두고는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 이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과열양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많게는 8개의 활동에 가입하는 학부모도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처럼 담임교사와의 대면이 많은 ‘보직’들은 경쟁도 치열하다.

얼마 전 중학생 자녀의 학부모총회에 참석한 어머니 P 씨(45·서울 강남구)는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봉사단체 △어머니합창단 △학교 안전지킴이 등 5개의 활동에 참가할 의향을 밝혔다. 그는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 한 달에 5∼7회는 학교에 나가 담임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서 “담임선생님과 친분을 자연스레 쌓으면서 딸의 외고진학 목표에 대해 꾸준히 어필하면 학기말 추천서를 쓸 때 좋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오전 등굣길 안전지도나 교내청소봉사활동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활동만을 골라서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학부모도 있다.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힘든 활동에 참여하면 담임선생님이 내 아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다.

외고 진학을 목표로 한 딸을 둔 어머니 S 씨(44·서울 강남구)는 “담임교사들은 ‘학부모가 어떤 활동을 얼마나 했는가에 따라 학생을 차별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하지만, 고입에서 교사추천서 내용은 학부모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불안한 마음에 눈에 띄는 활동만을 선택하는 학부모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김종현 기자 nanzz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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