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전용기를 타고 대구공항에 도착하던 20일 밤. 좁은 대구공항 출구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 중에는 버핏 회장을 만난다는 ‘큰 뉴스’를 지인들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알리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더 했다. 혹시 버핏 회장의 전용기가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지 몰라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한 김 시장은 내내 밝은 표정으로 설레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버핏 회장을 맞이하는 김 시장은 여러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그동안 대구에 눈에 띄는 기업 유치와 투자가 별로 없었던 데다 공들였던 대기업 투자 유치도 최근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월드 스타가 자신이 투자한 기업과 관련해 대구에 오는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대구시가 버핏 회장 방문을 대대적으로 알린 것도, 그가 머문 21일 오전은 대구 전체가 마치 ‘버핏의 날’처럼 느껴진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다.
김 시장이 버핏 회장을 8월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경기장까지 직접 가보도록 하고 대구의 핵심 사업인 첨단의료복합단지에도 관심을 갖도록 설명하는 등 그의 유명도를 적극 활용하려고 노력한 것은 잘한 일이다.
버핏 회장이 투자한 이스라엘 기업 대구텍은 직원이 1100여 명이고 연매출은 5000억 원가량이다. 이 정도 규모는 대구 전체 2869개 제조업체 가운데 20위권 정도에 속하는 중견기업으로 버핏 회장과 관련이 없다면 특별히 주목받을 기업은 아니다. 경북 구미공단만 하더라도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큰 외국 투자기업이 많다.
버핏 회장은 돌아갔지만 대구에는 큰 손님을 잘 치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버핏 회장의 방문이 대구를 반짝 알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대구지역 기업을 아주 다른 눈으로 살피는 계기와 교훈이 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대구지역 제조업체는 전국 5만8000여 기업 중 4% 정도에 불과하다. 성서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업을 하는 한 경영자는 “버핏 회장이 투자한 기업이 대구에 있고 그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것도 보기 좋지만 지역 기업에 평소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버핏 회장은 ‘미래 가치’를 중요한 투자 원칙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핏 회장을 예우하는 자세로 대구 기업을 진정으로 대접하는 풍토를 가꾸는 것이 바로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서 큰 미래 가치가 아닐까.
돌아간 버핏 회장을 아쉬워하며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남아 있는 대구 기업을 자나 깨나 걱정하는 분위기가 일상처럼 될 때 대구시의 소원인 대기업 유치 가능성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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