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聲 불패’ “돈되는 국책사업 따내라” 갈수록 극한 대결
‘고압 의회’ 외유성행사… 밥그릇챙기기… 브레이크 없어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가 부활한 이후 성년(成年)을 맞은 ‘지방자치 20년’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폐해의 그늘이 짙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른바 ‘돈 되는’ 국책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수천만 원의 ‘연봉’(의정비)과 막대한 권한을 두 손에 쥔 지방의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 나라 안중에 없고 지역이기주의만
수천억, 수조 원 단위의 국책사업 유치를 위해 지자체들은 ‘사생결단’ 식으로 경쟁을 벌이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30일 입지 선정 평가를 앞둔 동남권 신공항이 대표적인 사례. 현재 부산과 대구 경북 경남 등 영남권 4개 자치단체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대구 경남·북에서는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주장하고 있다. 해당 지역 곳곳에는 신공항 유치를 주장하는 현수막 수천 개가 내걸려 있다. 지방의회 차원의 성명서 발표가 잇따르고 시민단체들은 삭발 투쟁을 불사하는 등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진 상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는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사실상 ‘백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뒤 ‘충청권’과 ‘비충청권’이 치열한 유치 대결을 벌이고 있다. 과학벨트는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2007년 10월 충청권 공약으로 제시한 것. 당시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충남 연기·공주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충북 오창·오송단지를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묶어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문에 충청권은 유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 통과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충청권에 조성된다는 점이 명시되지 않으면서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올 들어 이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과 좌담회 등의 발언으로 충청권 유치가 사실상 백지화되자 전국의 광역지자체들이 유치위원회 등을 만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과 전북 군산공항 국제선 취항 등을 놓고 권역별, 지자체별 갈등이 폭발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김태기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소장(경제학과)은 “갈등을 유발하는 국책사업 대부분이 단기간에 수립된 공약성 사업이라는 것이 문제”라며 “임기 안에 무엇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 기간을 정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퇴보하는 지방의회
광역의원 및 기초의원들의 폭력, 욕설, 불성실, 이권 개입, 권위주의 등 끊이지 않는 추태도 심각한 문제다. 9일 제주도 연수 겸 세미나에 나선 부산 북구의회 의원들의 저녁 자리에서는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소란이 벌어졌다. A 의원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B 의원에게 폭탄주를 권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생긴 것. 이 과정에서 싸움을 말리던 C 의원은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다.
이숙정 경기 성남시의원은 1월 27일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주민센터를 찾아가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며 공공근로 여직원에게 행패를 부렸다.
혈세를 외유성 행사에 쓰고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부산 수영구의원 8명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14일 일본 첨단 방재시스템과 재래시장, 활어차 해수방류시스템 등을 둘러본다며 오사카로 연수를 떠났다. 1인당 연수비용은 176만 원. 손혁재 경기지역정책연구소장은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의 최대 원인은 부패이고 그중에서도 정당과 의회가 가장 취약한 분야”라며 “지방의회가 자율적으로 행동강령을 제정해 운영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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