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공부, 지식-기능 습득보다 학습과정 통한 사고력 훈련이 목적
생각하는 과정서 자신만의 논리 만들어 모르거나 잘못된 개념 스스로 탈피
동아일보DB
얼마 전 한 선배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자녀와 함께 수학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다는 것. 주어진 수학 문제는 ‘469-199’였다.
“문제를 풀 때 199를 ‘200-1’로 생각해서 계산하더라고. 이와 비슷한 다른 문제는 숫자를 작게 만들어서 계산하던데 이 문제에서는 왜 숫자를 크게 만들어서 계산하는 거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필자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이 문제는 초등학교 2학년 과정에 나오는 ‘세 자릿수의 덧셈과 뺄셈’이다. 이 단원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산하기’다. 따라서 단순히 답을 아느냐 모르느냐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 스스로 숫자를 조작해 보면서 좀 더 쉽고 빠르게 계산하는 방법을 찾고 논리적 사고력을 높이기 위한 것. 다양한 풀이법을 찾아보고 새로운 문제 해결법을 찾는 게 목적이다. 또한 이 문제는 계산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뺄셈에서 같은 자리끼리 계산한다는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본래 학습 내용을 다지는 역할도 함께 해 준다.
따라서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숫자를 크게 만드는지, 작게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공부해야 한다.
많은 학생이 맹목적으로 수학 지식을 암기하고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문제를 푼다. 이는 필자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이렇게 문제를 풀다 보면 학생들은 수학에 지치고 급기야 상급 학년에 진학한 뒤 수학에 흥미를 잃고 포기하게 된다.
학생들은 수 연산부터 미적분까지 많은 수학 지식을 습득한다. 그렇다면 수학을 왜 학습할까? 실생활에서 수학이 그렇게 많이 쓰일까? 수학 수업 시간이 다른 과목에 비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수학 지식과 기능을 단순히 습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수학의 목적은 학습 과정을 통해 체득할 수 있는 사고력 훈련, 즉 ‘생각하는 힘 키우기’에 있다.
수학 교육과정에는 수학의 개념, 원리, 법칙을 아는 것이 명시돼 있지 않다.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교육 목표로 제시한다.
사각형을 예로 들어 보자. 사각형을 학습할 때는 우선 여러 가지 모양의 사각형을 특성에 맞게 분류해본다. 이후 분류한 사각형의 공통된 성질을 정리한 뒤 개념을 정의한다. 다음으로 변, 각, 꼭짓점, 대각선 등 여러 요소를 파악함으로써 정의를 내린 사각형의 속성을 관찰한다. 그 속성을 이용해 작도를 해 보며 도형의 정의와 성질을 다시 확인한다.
김민식 시매쓰수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렇게 복잡하게 사각형을 학습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각형의 정의와 성질을 알고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가 아니다. 학습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실을 추측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이렇게 사실관계를 분석, 조직화하고 자신의 오류를 찾아내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게 된다.
새 교과서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라는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사고력 훈련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아는지 모르는지를 묻는 문제라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된다. 그러나 개념, 원리 등의 수학 지식을 학습하면서 빈번하게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정답보다는 학생들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질문은 2007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현재 수학 교과서에서 크게 확대됐다. 이는 수학이 단순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에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력을 높여주고 수학적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됐음을 상징한다.
문제를 푼 뒤 학생들에게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물어보자. 학생의 정답이 단지 우연이나 추측인지, 아니면 논리적인 사고 과정에서 나온 정답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문제를 첨삭해 주기도 좋다. 학생들의 질문에 “넌 그것도 몰라?”라고 답하기 전에 “넌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했니?”라고 되물어보자. 이렇게 질문하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 낸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깨우치거나 잘못된 개념도 스스로 탈피할 수 있다.
수학 교과과정이 추구하는 점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수학적 사고력은 어려운 문제 풀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모든 수학 학습이 학생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훈련의 일환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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