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일중 3학년 김동현 군(15). 그는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지질학을 연구하는 아버지의 유학 때문이었다. 그가 6세 때 아버지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의 연구원으로 파견됐다. 김 군은 다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오랜 해외 거주 기간 동안 아버지는 김 군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았던 미국에선 아버지가 연구하는 박물관에 놀러가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손을 꼭 잡고 박물관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어느 날, 김 군은 대형 화산모형 앞에 멈춰서더니 한 암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 저 돌은 뭐예요?”
“화강암이라고 한단다. 뜨거운 마그마가 땅 속에서 천천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돌이야. 그래서 매우 단단하지.”
김 군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돌의 성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김 군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처럼 멋진 과학자가 돼야지.’
김 군은 2002년 말 귀국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 군. 과학자의 꿈은 처음부터 장벽에 부딪혔다. 언어였다.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수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국어시간 첫 받아쓰기 성적은 0점. 노력해도 20점을 좀처럼 넘기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성적은 반 꼴찌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친구들과도 쉽사리 어울리기 어려워 답답하고 외로웠다.
한국말에 익숙해진 초등 3학년부턴 주위에 친구가 많아졌다. 행복했다. 쉬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떨기에 바빴다. 학교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으로 향했다. 공부는 뒷전이 됐다. 초등 4학년 때까지 성적은 반 35명 중 20등 이내. 과학자란 꿈은 머릿속에서 흐릿해져만 갔다.
○ 공부의 즐거움을 맛보다
초등 5학년이 됐다. 그는 공부의 즐거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의 작은 칭찬 한마디가 큰 원동력이 됐다.
“음악수업 때 별 생각 없이 리코더를 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동현이는 리코더를 정말 잘 부는구나’라고 말했어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무지 기분이 좋았죠. 나도 잘하는 게 있단 생각에 자신감도 생겼어요.”
담임선생님의 칭찬은 계속됐다. 수업시간 서투른 발표에도, 청소시간 빗자루 질 한번에도 “정말 잘했다” “성실한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을 들었다. 수업시간이 재미있어졌다. 특히 과학실험시간은 김 군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막대기의 그림자 길이를 통해 태양의 남중고도를 추정하는 실험을 할 땐 이를 위해 하루 종일 운동장에 머물기도 했다.
수업준비도 열심히 했다. 하루 세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다음날 배울 과목 교과서를 미리 읽어봤다.
초등 5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든 김 군은 깜짝 놀랐다. 평균 93점. 특히 과학은 반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았다. 초등 5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선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모든 과목을 통틀어 단 두 문제밖에 틀리지 않았다.
“재미있게 공부하니까 자연스레 성적이 오르더라고요. 이후에도 성적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 한 단계 더 도약하다
초등 6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교내 과학경시대회로 착각해 우연히 치르게 된 부산시교육청 영재교육원 시험은 김 군에게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비록 합격은 하지 못했지만 이는 과학자란 오랜 꿈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과학영재학교 진학. 과학자란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김 군의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41등. 결코 낮지 않은 등수임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성적으론 과학영재학교 진학은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최상위권으로의 도약을 위해 김 군이 택한 공부의 비결은 ‘노력’이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오후 4시 반부터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까지 공부에 쏟아부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학습플랜도 작성했다. 공부할 과목과 시간, 분량까지 꼼꼼히 정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부분은 다음날 학습계획에 포함하거나 주말을 활용해 보충했다.
중학교 진학 후 김 군의 취약과목은 국어와 사회. 초등학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단어와 한자어가 많이 등장하는 게 난관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 2∼3시간을 국어와 사회 공부에 할애했다. 교과서 옆에 국어사전을 펼쳐놓은 채 ‘자조적’이나 ‘냉소적’처럼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단어들은 바로바로 찾아봤다. 한 번 찾은 단어들은 따로 노트를 만들어 반드시 정리했다.
김 군의 노력은 1년 후부터 빛을 발했다. 중2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3등. 이후 전교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했다. 과학자란 꿈도 친환경에너지 전문연구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자가 될 거란 생각에서다.
“고교 입시와 대학 진학이 기다리고 있지만 앞으로도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아요. 단지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박물관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던 그때 마음처럼 늘 즐겁게 공부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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